특별한 밥 한끼, 비우고 나누고 채우는 대안밥집

▲ 손맛 좋은 어머니를 스승으로 삼고 젊은 영쉐프가 운영하는 대안밥집 성북슬로비.
'밥 한끼 먹자'는 말이 흔한 인사다. 먹고살기 위해 한끼를 '때우'고 마는 바쁜 일상, 그런데 한끼 식사를 하는 것으로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작지만 의미있는 대안적인 식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윤을 위해 차려주는 식사를 1회성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먹거리에 대해 생각하고 참여하는 일종의 '스타일'이자, 미래를 창출하게 하는 투자다.

청소년들의 꿈을 실현하는 도시락가게

사회적기업 '오가니제이션요리'의 '홍대슬로비'와 '제주슬로비'에 이은 세번째 가게 '성북슬로비'는 이러한 가치들이 집약된 공간이다.

2013년 9월 오픈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성북슬로비'는 '오가니제이션요리'의 청소년요리학교 '영쉐프' 출신의 젊은 쉐프가 주방을 담당하는 청년창업레스토랑이다.

청소년들이 직업체험을 하는 하자센터를 통해 2년동안의 교육과 실습을 마친 영쉐프 스물두살의 '상근'이 매일 친환경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

성북구청 옆에 위치한 '성북슬로비'는 모던하고 깔끔한 간판과 인테리어로 먼저 눈길을 잡는다. 깔끔한 주방이 훤히 보이는 이 곳은 '손맛 좋은 어머니'를 스승으로 '젊은 영쉐프'와 '운영하는 청년'인 매니저, 3자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원산지를 꼼꼼히 밝힌 유기농 식재료들로 친환경 도시락을 내놓는 '성북슬로비'는 주문에서부터 가치를 담았다.

카운터 앞에는 매일 '그때그때도시락' 메뉴가 적히는데, 이 메뉴가 단품으로 각기 주문이 가능하다.

현미밥과 그때그때된장국, 오늘의반찬A, 오늘의반찬B에 소불고기, 수제돈가스, 유정란프라이까지 자신이 원하는 조합의 도시락을 만들 수 있다.

'오가니제이션요리'의 팀장 '제비'는 "빈그릇운동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이런 메뉴를 내놓았다"고 말한다. 원하는 반찬을 선택해 남겨지는 음식물쓰레기를 없애자는 취지다. 또한 빈그릇이 확인되면 스탬프를 받는데, 이 스탬프를 열 개 모으면 반찬 하나를 받을 수 있다.

뭐니뭐니해도 도시락의 백미는 포장, '성북슬로비'는 일반쓰레기로 분류되는 생분해성용기를 사용해 도시락을 포장하고 있다.

10회 쿠폰 성격인 '끼니찾기운동'을 통해 '나를 걱정하고 내 건강을 챙겨주는 돌봄서비스'도 '성북슬로비'의 특징이다.

끼니찾기운동 참가자들에게는 감기예방수제과일청과 같은 제철에 필요한 먹거리나 식문화워크숍 '오-라잇테이블' 참가권같은 선물도 전해진다.

대안식문화운동의 대명사 '홍대슬로비'와 '제주슬로비'를 통해 쌓은 노하우에, 1인가구가 많은 지역특징을 적절히 배합한 것이다.

기본도시락에 단품을 추가해 도시락을 주문했다. 꽈리고추의 아삭함이 살아있는 잔멸치조림과 화학조미료 없이 매콤하면서도 개운한 제육볶음, 잡내없이 맑고 구수한 된장국 등 '몸에 좋은 음식이니 맛은 덜할 것'이라는 예상을 무참히 깨뜨린다.

무엇보다도 그램 수, 불 세기, 익히는 초까지 칼같이 정확한 레시피를 따르는 영쉐프들의 솜씨로 '사진과 똑같은' 도시락이 테이블에 오른다.

'성북슬로비'는 영쉐프 출신의 쉐프가 운영하는 사업장이자 과정 중의 청소년이 인턴십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학교가 곧 일터'라는 모토 아래 현장경험을 쌓을 수 있는 반년간의 최종 단계다.

수익금 역시 대부분 무료로 진행되는 영쉐프스쿨에 쓰인다. 방황하는 청소년이나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청소년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같은 공간이 바로 '성북슬로비'다.
▲ 비움과 나눔 정신을 실천하는 문턱 없는 밥집 전경.
주민들이 되살려낸 소중한 밥집

2007년 당시에는 생소한 '대안식당'이라는 개념으로 문을 연 '문턱없는밥집'은 '친환경'과 '나눔실천'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이 곳은 전북 변산에서 유기농업과 대안교육 운동을 펴고 있는 변산공동체에서 시작됐다.

변산공동체 설립자인 농부 철학자 윤구병씨가 독일의 '경계없는 식당' 이야기에 착안해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식당을 냈다. 변산의 유기농 친환경 재료로 만든 음식을 내놓되, 나눔을 실천하자는 것이 취지였다.
누구나 좋은 밥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어려운 가치를 위해 이 곳은 12시부터 1시30분까지 점심시간에 가격이 책정되지 않은 '유기농비빔밥'을 내놓는다.

'친환경 농산물 우수식당' 인증을 받은만큼 쌀부터 나물, 달걀프라이, 양념까지 100% 친환경 유기농 재료다.

원가는 8천원이지만 손님에 따라 1천원을 내기도 하고, 귀한 식사라며 몇만원의 거금을 내기도 한다. 설립 이사이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은 이름 '문턱 없는 밥집'의 뜻, 그대로다.

그러나 이곳이 이른바 '1천원밥집'으로만 부각되면서 경영 위기가 찾아왔다. 아무리 어려워도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를 포기하지 않은 꿋꿋함도 이유였다. 마포울림두레생협, 홍성유기농협동조합, 주)콩세알, 여성민우생협 등의 거래처는 식재료 뿐 아니라 해당 농민들의 생존과도 결부되어있는 문제였다.

또한 눈에 잘 띄지 않는 세제와 휴지까지도 친환경, 재생용지 제품을 사용하는 고집은 '비움과 나눔' 정신에 있어 도무지 양보할 수가 없었다.

폐업위기에 처한 2012년, 따뜻한 손길을 내민 것은 다름 아닌 인근 주민들이었다. '이런 훌륭한 밥집이 문닫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던 주민들은 협동조합으로 '문턱없는밥집'을 살려낸다. 때마침 서울시 마을공동체기업으로도 선정, 무이자 대출로 급한 불도 껐다.

2013년 5월, 10명의 이사와 100명의 조합원이 모여 '사회적협동조합 문턱없는 세상'을 '문턱 없는 밥집' 간판 옆에 내걸고 2막을 시작했다.

나눔과 비움 밥상의 상징인 가격없는 유기농비빔밥은 배식대에서 재료를 고를 때부터 신중해야 한다.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담고, 다 먹은 뒤에는 숭늉과 무를 이용해 남은 양념을 깨끗이 닦아 모두 먹는다.

템플스테이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발우공양' 형식인데, 애초에 밥집 문을 열 때부터 사)에코붓다와 협약을 맺어 실천하고 있는 '빈그릇운동'이다.

최근에는 비빔밥 한가지던 점심메뉴가 조금 달라졌다. 곤드레밥, 톳밥 등 제철의 귀한 재료가 들어가는 한그릇 음식이 다양하게 나온다.

엄민영 이사장이 '일년에 한두번밖에 안 나오는 메뉴'라고 하는 수제비가 나오던 날, 담박하고 개운한 국물 안에는 감자가 껍질이 붙은 채 동동 떠있었다. 생전 처음 먹어본 감자껍질은 고소하고 씹히는 맛도 좋았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도 껍질째 요리하지만, 출처가 분명한 유기농 친환경 재료라서 손이 덜 갈수록 더 맛있다는 설명이다.

밥집 전체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제로에 가까운 문턱없는밥집의 주방은 기발한 아이디어의 집합소다.

다시를 내고 흔히 버리는 건더기는 변산간장과 조청을 더해 감칠맛나는 나머지 조림으로 변신시키고, 남은 채소 꽁다리들을 모아 이름도 귀여운 '꽁다리전'으로 밥상에 올린다. 수십, 수백명이 없는 문턱없이 드나드는 밥집 주방이 한산하고 깨끗한 이유다.

"우리 동네에 이런 식당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는 마포구 주민들의 간절한 서원으로 되살아난 문턱없는밥집, 비움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이 밥 한그릇의 온기가 빡빡하고 거친 서울살이에 지친 이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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