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심과 인내, 신성으로써 유시무종이 안 되도록 본회를 성립하자'

인근 사찰에 주차를 하고 언덕산을 넘어 보광사로 향하는 길. 봄날처럼 따스한 햇살이다. 그러나 불어오는 바람은 이내 목을 답답하게 한다. 며칠째 고비사막에서 불어온 황사에 실려진 미세먼지. 중국을 스모그로 뒤덮는 모래바람 위세에 우리나라도 연일 경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꼭 모래바람 때문은 아니어도 며칠째 되풀이해서 듣고 있는 노래가 있다. 고봉산 오솔길을 오르면서 다시 되풀이 한다. 바람이 분다.

새회상 창립총회 보광사

원기9년(1924) 4월29일(양력 6월1일) 교단의 임시 명칭이었던 '불법연구회'의 창립총회를 개최한 보광사. 새 회상의 사적지인 보광사는 지금은 대한불교 화엄종에 소속돼 있다. 흙으로 다져진 나무 계단을 한 발 한 발 오른다. 오랜만에 도심에서 걷는 숲 속 오솔길. 소나무 숲에서 전해지는 향이 요즘 물기 없이 버석해진 내 마음을 정화시킨다. 짧은 숲길이 아쉬워 같은 동선을 한참동안 맴도는 발길. 마음도 그 숲에 그렇게 한참동안 머물러 있었다.

〈소태산대종사 생애 60가지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보광사 창립총회에 영광지방의 김기천·김광선·오창건·이동안·이준경과 김제지방의 서중안·송만경·김두환·이일근·구남수, 익산지방의 박원석, 전주지방의 문정규·전음광·임동악이 각각 지방대표 자격으로 참석하였고, 이밖에도 다수의 신도들이 참석하여 39명이 모였다." 당시 임시의장인 송만경이 회의를 진행하고 창립취지를 설명했다.

'공심과 인내, 신성으로써 유시무종이 안 되도록 본회를 성립하자' 창립총회 취지다. 새회상 창립총회는 39인의 공심과 인내, 신성이 결집된 것이다. 선거에 임하여 '불법에 정통하고 범사에 모범이 될 만한 사람으로 본회를 지도 감독할 책임'을 갖는 불법연구회 총재에 소태산대종사가 만장일치로 추대됐다.

보광사는 당시의 건물은 퇴락하고 법당과 요사채를 중건했다. 현재 '2020년 창건 100주년 대웅전 건립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절 마당에 미륵불이 서있다. 누군가는 이 미륵불이 '신룡벌을 향해 서 있다'고 표현했다. '미륵이 짚신을 신고 마당을 나왔다'는 표현도 상징적이다. 정갈하게 쌓여있는 장작, 무심한 듯 다듬어진 돌담의 연못, 흙벽을 쌓아올린 굴뚝까지, 아담한 절 보광사를 관리하는 손길이 느껴졌다. 먹거리를 자급하기에 충분한 텃밭에선 한 철 내내 각종 채소들이 또 살뜰하게 키워질 것이다.

'창립회의에는 네 가지 안건을 논의했다. 첫 번째 안으로 〈불법연구회규약〉을 이의 없이 한 조목 한 조목씩 차례로 원 초안 그대로 통과시켰다. 두 번째 안은 회상의 유지 안건으로 회원의 회비를 월 12전, 연 1원으로 정하고, 그 부족금에 대해서는 작농 수익과 의연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세 번째 안으로 송만경이 회관 건축안을 내놓았다. 금년 가을까지 초가집이라도 건립하자는데 만장이 찬성하고 당장 예산이 서있지 않는 실정이므로 송만경과 문정규가 나서서 각처 회원들에게 모금을 하기로 했다. 네 번째 안은 오창건이 영광은 회원이 가장 많고 기성조합의 본거지이니 길룡리에 기성조합실출장소를 설치하여 그곳 회원을 관리하자는 안을 내었다.'
▲ 무심한 듯 다듬어진 보광사 돌담 연못.
햇볕 따사로운 법당 마루에 앉았다. 초창기 실상을 우리 교사 〈새 회상의 공개〉장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불법연구회 창립 준비를 토의할 제 대종사 총부 기지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리 부근은 토지도 광활하고 교통이 편리하여 무산자들의 생활과 각처 회원의 내왕에 편리할 듯하니 그곳으로 정함이 어떠한가 하심에 일동이 그 말씀에 복종하였다.'소작농을 하여 엿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무산자들의 생활을 염려하셨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창립총회는 김기천이 '재가 출가 선법과 솔성요론'의 강의를 한 후, 축사를 끝으로 오후 3시에 폐회를 선언했다. 이로써 소태산대종사는 1916년 깨달음을 얻은 후 영산에서 4년, 변산에서 4년의 준비과정 끝에 창립총회를 열어 새 회상을 '불법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공개했다.

창립총회 강의 제목을 다시 새겨본다. '재가 출가 선법과 솔성요론.' 〈정전〉 제3 수행편 제12장 솔성요론, 한 조목 한 조목을 읽으며 그 의미를 마음 안에 천천히 들인다. '정당한 일이거든 내 일을 생각하여 남의 세정을 알아줄 것이요, 정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죽기로써 할 것이요, 부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죽기로써 아니할 것이요.'

보광사 툇마루에 햇살이 가득하다.
▲ 흙으로 다져진 나무계단.
정갈하게 쌓여있는 장작
무심한 듯 다듬어진 돌담의 연못
흙벽을 쌓아올린 굴뚝까지
아담한 절 보광사를 관리하는
살뜰한 손길이 느껴졌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