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의 진리를 범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진공묘유(眞空妙有)이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하다. 때문에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다는 것은 수행적 접근으로 회복하고 닮아가야 할 표준이다.

소태산대종사께서는 웬만하면 과거의 보편적인 언어를 써서 대중이 진리를 인식하는 데 어렵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진리를 인간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부득이 독창적일 수 밖에 없었다.

진리의 속성을 표현하는 말로는 공·원·정이 있다. 이 또한 소태산대종사의 독창적인 표현이다. 공(空)은 텅 비어 있는 속성을 일컫고 원(圓)은 밝은 면이 있다. 그리고 정(正)은 바르고 상황에 적합하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다는 말이다. 이처럼 진리를 세 가지와 두 가지 측면으로 보는 관점의 차이가 있을 뿐, 이 모두가 진리를 표현한 말이다. 이 두 표현의 연관성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에 정리해서 짚어본다.

원만구족하다는 것은 '공'을 중심으로 '원'이 있고 '정'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일이 없을 때의 표준이 된다. 일은 일이 없을 때의 준비로 인해서 성패가 나타난다. 이때의 준비는 정서적 안정과 지혜에 따른 관점, 그리고 일의 기틀에 따라 실현할 수 있는 준비를 말한다.

일이 없을 때의 생활은 수양을 중심으로 좌선, 염불, 기도, 운동, 휴식을 하고 연구를 중심으로 경전, 독서, 의두·성리, 정기일기를 한다. 그리고 취사를 중심으로 해야 할 일과 있어질 만한 일을 준비한다. 즉 원만구족은 '공'을 중심으로 한 자성반조(自性返照)의 표준이 된다.

지공무사하다는 것은 '정'을 중심으로 '원'이 받쳐주고 '공'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일이 있을 때의 표준이 된다. 일이 없을 때의 심정 즉 평상심(平常心)으로 할 때 효과가 크다. 이때는 온 역량을 동원해서 신분의성으로 하는데 결과는 은혜 창출에 두어야 한다.

일이 있을 때의 생활은 취사를 중심으로 주의하는 마음을 갖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신·분·의·성(信忿疑誠)으로 하되 일이 끝나면 상시일기로 되돌아 살펴본다. 하지만 오늘 날의 일은 그리 단순치 않다. 여러 가지 일이 혼재되어 있지만 진행하면서도 변화가 다양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과 지혜, 즉 준비된 연구력이 필요하다. 또한 복잡다단한 일에서 정서가 흔들리지 않을 만한 준비된 수양력 또한 요구되는 상황이다. 즉 지공무사는 '정'을 중심으로 한 목적반조(目的返照)의 표준이 된다.

삼대력(수양력, 연구력, 취사력)은 삼학(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을 통한 완성체인데 이것을 두 가지 측면에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라 하지만 삶의 숨결이 느껴지는 수행적 표현이다.

<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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