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관음 교도 / 원성교당
13년전 원성교당 장원경 교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전북 익산에 사는 시어머님께서 우리 가족을 입교시켰는데 찾아오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입교 사실도 몰랐습니다. 저희 집을 방문하신 교무님께서는 테니스를 좋아한다는 남편을 교당에 다니게 하기 위해 "교당에도 테니스를 좋아하시는 교도님이 계시니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에게 지극한 공을 들이셨지만 정작 교당에 간 것은 며느리인 저였습니다.

저는 초등학교시기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다양한 교회를 섭렵했지만 확실한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교무님께서 말씀해주신 법문 중 '인과보응'이란 말씀이 제 마음에 꽂혔습니다. '그래 맞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믿기만 하면 모든 죄가 사해진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를 계기로 아이들 셋과 남편을 불공하며 교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교당에 나가긴 했지만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있어 교당에는 한 발 슬쩍 빼고 있던 중 원불교100년기념성업으로 유무념을 강조한 지침을 받들고 공부하자는 마음이 일어나 나의 생활과 유무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습니다.

유무념은 원불교 상기일기법 중 하나로써 '모든 일을 당하여 유념으로 처리한 것과 무념으로 처리한 번수를 조사 기재하되, 하자는 조목과 말자는 조목에 취사하는 주의심을 가지고 한 것은 유념이라 하고, 취사하는 주의심이 없이 한 것은 무념이라 하나니, 처음에는 일이 잘 되었든지 못 되었든지 취사하는 주의심을 놓고 안 놓은 것으로 번수를 계산하나, 공부가 깊어가면 일이 잘되고 못된 것으로 번수를 계산하는 것이요'라고 밝혀주셨습니다. 법문을 새기면서 교도로서 지켜야 할 '조석심고, 법회출석, 입교연원, 보은헌공'의 사종의무실천을 먼저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법회출석입니다. 입교초기 법회만 간간히 참석하는 나에게 일요일에는 잠깐 교도가 되었다가 주중에는 생활에 끌리는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니 신앙이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무념으로 마음을 다시 챙겨 아이들과 남편이 주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고자 법회출석에 정성을 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이 다 빠져나가지만 콩나물이 자라듯이 조금씩 교도로서의 습관이 형성되어 갔습니다. 일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자면 때론 협박도 하기도 하고 내가 먼저 더 챙겨야지 하는 분발심도 갖게 됐습니다. 우리 교당은 어린이서부터 일반까지 함께하는 법회라서 교무님 말씀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며 안가겠다는 아이들에게 너희는 아직 성인이 아니니 부모님 뜻에 따라야 한다고 어르기도 했습니다. 저도 신앙적으로 말 잘 듣는 흰 소가 아니고 습관에 젖어 내 멋대로 하려는 검은 소인데 망아지 같은 아이 셋을 데려오려니 일요일 아침부터 마음이 요란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자녀들도 법회출석에 거의 빠지지 않고, 남편도 사축이재나 가족법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조석심고입니다. 처음에는 융통성 없이 시간에 맞춰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잘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시도를 해 보았지만 지속성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교도로서 불성실한 것 같고 신앙적으로도 성숙이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맞지 않더라도 챙기는 마음을 내어 하고자 하니 좀 더 잘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저녁심고 전 교무님께서 "가족모두 심고 올립시다"하며 보내주신 문자가 도움이 됐습니다.

셋째는 입교연원입니다. 입교연원의 실천에 있어서는 소극적이었습니다. 나부터 확실하게 다니고 제대로 해야 타인에게 권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뭐가 좋냐고?" 물었을 때, 답변이 궁색하기도 했고, "원불교 다니는 사람이 왜 저래?"하는 비난을 받기 싫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어머님이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 가족을 입교시켜 지금에 이르게 한 것처럼 "인연은 만들어 놓고 보자! 그 인연들이 원불교에 빠질 기회가 오겠지!"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제 역할은 원불교와의 인연을 맺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좀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 법명이 관음인데 이런 법명 받기가 쉽지 않다는 한 교도님의 말씀에 제 법명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면서 "법명 값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은헌공입니다. 교당이나 사회에 보은헌공을 하면서 내 형편을 고려하면 항상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내 형편에 이렇게 해도 되나. 더 넉넉해지면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형편 보다는 마음이 먼저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교당일이나, 어려운 이웃의 일이나 가능하면 참여하려고 합니다. 때가 지나면 삶이 나아져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지역사회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회비를 납부하고 아이들에게도 수입의 1%를 나누는 것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아직은 보은헌공시 내가 했네 하는 상을 갖지 않도록 마음챙김이 필요한 듯 합니다.

앞으로 실력있는 교도가 될 수 있도록 신앙수행에 정진하여 교도로서 좋은 향기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유무념공부를 통해 과거의 습관을 고치는데 노력하고자 합니다. 때때로 정도에서 벗어나 헤매일 때도 있겠지만 반드시 돌아와 조금이라도 진급하는 생활을 하여 죽음 앞에서 '이정도면 괜찮아 잘 살았어'라는 생각이 들도록 유무념공부를 통해 미리 준비하는 공부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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