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없는 천진성, 100년을 살아온 비결

▲ 한보은행 교도가 강아지 '푸리'를 부르며 봄 햇살을 즐기고 있다.
김제 장수촌으로 알려지고 있는 어유마을. 봄이 오는 소리가 파릇파릇하다. 뒷 밭 비닐하우스 곁에 푸른 냉이가 싱싱함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원평교당 교도로 등록돼 있는 104세 한보은행 교도를 만나러 가는 길. 꽃샘추위가 오는 봄을 시샘하는 양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셋째아들 상길 씨와 오순도순 일상을 지내는 한보은행 교도. 104년이란 긴 세월동안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 것은 당연 시집살이 하던 힘든 시절이다. 그의 기억 속 이야기에 눈높이를 같이 했다.

아들 박상길 씨와 오순도순

골목길을 따라 한보은행 교도댁에 도착했다. 삐툴빼툴한 글씨로 새겨진 문패'박상길'은 정감이 어려 시선을 잡아둔다. 낮은 앞산이 훤히 보이는 앞마당에 도착하니 한보은행 교도의 아들 박상길 씨가 화목 보일러를 점검하고 있다. 반갑게 꼬리치는 강아지 '푸리'에게 인사하니 상길 씨는 "금산사 저수지 둑에서 길을 잃어 데리고 왔는데 잘 크고 있다"고 소개했다.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상길 씨다.

햇볕이 잘 드는 마당 처마 밑에는 스치로풀 박스에 돌미나리가 심어져 있다. 상길 씨는 "어머니가 돌미나리를 캐다 심어보라고 해서 심었는데, 잘 클는지 모르겠다. 물을 많이 줘야 한다"고 거듭 설명했다.

부엌방에서 인기척을 느낀 104세 한보은행 교도가 나오며 반갑게 맞이해 줬다.
"선상님 오셨어요." "추운데 먼 길 오신다고 고생했소. 어서 들어오셔."

아들 상길씨도 따라 들어오며 "나도 교당에 다니다가 이제는 안 나가고 있다. 회비도 내야하는데 벌이도 시원찮고. 또 선생님도 자꾸 바뀌게 되더라. 이번에 누가 오시나 궁금했다"고 관심을 유도했다. 아들 상길 씨는 군대에서 근무하는 동안 몸이 이상해져 현재 장가도 못가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 어머니가 아들을 돌보는지, 아들이 어머니를 돌보는지 어찌 보면 서로를 의지하여 살고 있으니 참 은혜로은 관계로 느껴졌다.

14살 시집오다

한보은행 교도가 원평으로 시집온 것은 14살 때이다.
그는 "일정 때 왜놈들이 동네 처자들을 다 잡아갔다. 아버지는 딸 안 뺏기려고 14살에 나를 사람도 보지 않고 무조건 보냈다"며 "오빠와 나 둘이라 자식이 귀해서 아버지가 그렇게 했다"고 설명했다.

일찍 시집온 만큼 그는 고생도 많이 했다. 그는 "내가 일본놈들 때문에 고생한 것 생각하면 지금도 억장이 무너진다. 사람들 죽이는 것은 예사였다. 난리가 아녔다. 일본 사람들 한 행동을 다 이야기 하라믄 징그러워서 말도 다 못한다"고 혀를 내둘렀다. 일정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대를 부정하고 있으니 더 화가 난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데, 나같이 자세히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총, 칼 들고 말 타고 원평 동네를 다 휘젓고 다녔다"고 자세히 기억했다.

그는 건강 유지 비결에 대해 "고기도 잘 안 먹는다. 닭고기도 조금씩 먹다 말다 한다. 찬물에 밥 말아 먹는다. 처음 시집와서부터 지금까지 평생 그렇게 먹고 살았다"며 "반찬 잘 해 먹는 것도 없다. 내 손으로 만들어서 채소 위주로 먹는다. 맘에 안 든 것은 잘 먹지도 않는다. 식당 음식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식사습관을 소개했다. 요즘은 이가 더 시원찮아져서 밥에 물 말아먹는 것이 제일 좋다고.
▲ 둘째 아들 박상봉 씨와 삼남 박상길 씨(뒤쪽), 한순인 둘째 자부. 한마을에 살며 서로를 돌보고 있다.
지금도 뉴스 시청해

104세인 한 교도는 뉴스를 좋아한다. 특히 '6시 내고향' 프로도 챙겨보는 충성도 높은 시청자이기도 하다. 이 마을 저 마을 고향 소식이 재밌고 반갑다는 것이다. 외출하는 일이 거의 없어서 TV를 통해 전국 일주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드라마 보다는 뉴스를 많이 보고 있다. 고맙게 뉴스도 알아 들을 수 있게 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들린다. 이 나이 먹도록 병원에 안 가는 편이다"고 건강을 감사해 했다.

그는 "이제 나이가 들어 잠이 잘 오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면 머리를 감고 씻고 한다"며 "화목보일러라 늘 따뜻한 물이 있고 방이 따뜻하니 건강한 것 같다. 아침마다 세수하고 밥 먹지 세수 안하고 밥 먹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가 거처하는 부엌이나 방은 깔끔 그 자체였다. 104세 어르신이 어찌도 이리 살림을 깔끔하게 할까 싶을 정도이다. 물론 같은 마을에 둘째 며느리가 함께 살기는 하지만 깔끔한 것은 그의 성품이라고.

둘째아들 박상봉 씨는 "어머니 연세가 많아지시니 혹 더 편찮아질까 걱정이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오래 오래 곁에 계시면 좋겠다"며 "요양원에 모시는 일은 답답해서 싫다. 그나마 이렇게 사는 것이 큰 행복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평교당에 다니는 둘째 며느리 한순인 교도도 "어머니는 건강을 타고 나신 것 같다. 욕심없이 살고 계시기 때문에 이만큼 건강을 유지하며 계신다"며 "다만 앉아 계시는 것이 조금 불편하다. 치질이 있어 치료를 해 드리고 싶어도 고령이라 수술이 안된다. 안타깝다"고 애타는 심경을 밝혔다.

지금도 빨래는 어르신이

그는 건강관리의 첫째 조건으로 "마음이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평상심을 말한 것이다. 그는 "남들 말하기 좋아하지 말고, 싫은 소리도 하지 말고, 피해도 주지 말고 거짓없이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아버지에 대해 "착한 성품을 한 눈에 알아본 시아버지는 나이어린 며느리가 시집살이 하는 것이 안타까워 시어머니 보이지 않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감사한 마음을 기억해 냈다. 첫째도 둘째도 마음을 옳게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집살이가 고달플 때는 변소 모퉁이 가서 울었다"며 "참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래도 시아버지는 예의범절 잘 익혀 왔다고 칭찬했다. 시어머니, 시아제 구박 받고 살았어도 듣기 싫은 소리 남에게 전하지 않았고 남 탓 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시집살이의 긴 설움을 토해냈다.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봉사 3년 그렇게 살라고 친정 어머니가 당부한 것을 지켜낸 것이다.

한 교도의 요즘 소원은 "6남매 자녀들이 건강하게 살아주는 것 감사하다. 또 돈 많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 보다 깨끗하게 태어나 한 평생을 살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참 좋다"며 "올해는 반둣하게 앉지도 못하고 살고 있으니 어서 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내 옷 내가 빨 수 있고 아들 옷도 내가 빨래 할 수 있으니 그것 또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39살 먹은 손주가 장가나 후딱 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소원이다"며 "아들 상길이가 각시 없이 살아 마음에 걸릴 뿐이지 다른 것 걸리는 것 하나 없다. 14명 되는 손자녀 다들 건강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기쁨을 표현했다.

그가 거처하는 방 벽에는 부채 두 개가 걸려있다. 원청 30주년과 네덕 내탓 부채이다. 교당 결석하지 않고 다녔을 때 교무선생님이 줬다는 기억도 또렷하다. 담담한 맛을 좋아하기에 인생 전반에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살아온 한 교도의 삶. 100년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손목에 코발트빛 염주를 채워 드렸다.

천진난만한 소녀처럼 활짝 웃는 웃음. 그 속에 장수의 비결이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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