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교당에서 처음 뵌 대산종사

▲ 주성균 교무 / 100년기념성업회
고등학교 동창생을 따라 우연히 교당에 갔었다. 난생 처음 대각전에 모셔진 검은 일원상을 보았다. 그리고 검은 치마에 쪽진 머리를 한 교무님을 뵙고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 날 이후 온통 생각이 검은 동그라미 속으로만 빠져 들어갔다. 그러면서 교당에 다니게 되었고 그 다니는 재미가 서서히 붙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총부에서 큰 어른이 오신다는 교무님의 말씀이 있었다.

원기63년 4월16일 부산교구 대법회에 오신 대산종사께서 양정교당을 방문하셨다. 대산종사께서 교당의 이모저모를 살피시며 물으셨다.

"교당 뒷산 이름이 무엇이냐?" "황령산입니다." "황령산이라, 전무출신이 많이 나오겠다."

그러신 후 대중을 쭉 둘러보시더니 "저기 머리 깎은 학생 전무출신하면 되겠다. 저 학생도 전무출신감이다"라고 하셨다. 정작 당사자인 나에게는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눈도 마주치지 않으셨다.

그 당시 나는 전무출신에 대한 생각보다 사회사업가가 평소 나의 꿈이어서 그런 말씀에 조금 섭섭하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날 무슨 법문을 하셨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 머리깍은 학생 전무출신하면 되겠다'는 물음만은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전무출신에 대한 서원을 세우게 되었고 군대를 다녀왔다. 원기70년 1월23일 장산 황직평 종사를 부산역에서 만나 기차를 타고 삼동원으로 떠났다. 대전역에서 내려 늦은 밤 봉고차를 타고 낯선 골짜기를 따라 하얀 눈이 가득 쌓인 벌곡에 짐을 풀었다. 낮선 풍경에 잠을 설치고 다음날 대산종사님을 뵙고 간사 근무를 시작했다.

양정교당에서의 첫 만남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대산종사께 당돌하게 여쭈었다. "왜, 저한테는 전무출신 하라는 말씀을 한 마디도 안하셨습니까?" 하고 여쭈니 손을 잡으시며 미소만 띄고 계셨다.

간사 근무기간이 끝나고 대학생활을 하고 훈련교무기간 1년을 거쳐 다시 법무실로 발령이 났다. 이제 간사가 아닌 정식 교역자이자 시봉진으로서 대산종사를 모시는 근무가 시작됐다. 대산종사는 평생 건강이 여의치 않아 정양하며 몸을 다스리며 존절하게 사신 분이었다. 말년 정양기간으로 생각하고 모시기로 하였다. 간사시절로 돌아가 그 마음으로 소자(小子)로 살기로 다짐했다.

교단의 종법사로 임기말 3년을 모시고, 종법사를 퇴임하고 교단의 상사(上師)로 2년간 모시다 열반 두 해를 채 남기지 못하고 총부 재정산업부로 이동하게 되었다. 열반하시기 전까지 모시지 못했음에 지금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 새 근무지에 적응하려고 하자마자 대산종사께서 열반에 드셨다. 스승님 떠나신 슬픔으로 총부 구내를 밤이 하얗도록 이슬을 맞으며 다녔다.

이렇게 대산종사와의 인연이 끝나는 줄 알았다. 익산 팔봉동 화장장에서 대산종사 성해를 모시고 나오니 서녘하늘에 붉은 노을이 드리워져 있었다. 오전은 비가 내려 천지가 울고 있는 모양이었고, 오후에는 비가 그쳐 발인식 내내 하늘이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화장이 끝난 저녁 무렵 붉게 물든 하늘은 마치 님의 가시는 길을 축하한 듯 했다. 모든 게 한 마음 차이임을 알았다. 슬픔과 기쁨이 둘이 아님을 알고 조금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스승님은 '언젠가 너는 내일을 할 것이다'고 하셨다. 서녘하늘에 붉게 물든 노을은 그 궁금증만 더하고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지금은 대산종사 법문 및 자료 정리를 맡고 있으니 그 수많은 별들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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