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남 교도·서울교당
(논설위원)
평화란 관계의 소산
관계는 우주만물을 포괄

'평화의 비닐하우스 성자' 대산종사의 탄생100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사상과 경륜을 기리고 전승하고자 하는 노력이 한창이다. 대표적으로, 하나의 평화세계 건설을 염원했던 그는 '세계평화 3대제언'을 통해 심전계발, 공동시장개척, 종교연합기구창설 등을 주창했다.

기념대법회를 비롯한 크고 작은 기념행사가 한창 준비 중인 이 때 우리 일상에서 평화를 실천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평화란 관계의 소산이다. 일어나는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개인의 마음작용은 무언가와의 인연을 따라 나타난다. 다시 말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또는 인과 속에 있는 관계를 통해 발생한다. 관계는 개인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조직, 사회, 국가, 세계를 포함한 우주만물과의 관계를 포괄한다.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본질 그 자체가 우리의 평화로운 삶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우리 일상에서 평화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평화로운 관계를 가꾸고 유지한다는 의미이고, 평화를 실천한다는 것은 바로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 실천적으로 노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상의 수행을 통한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외에 사회적 관계를 평화롭게 개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비평화적인 관계를 맺고 산다. 보통 직접적 형태나 가시적인 폭력은 쉽게 인지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실천하는 것도 큰 도전이다.

다음 단계는 간접적인 형태의 폭력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간접적 형태의 폭력은 인류문명이 분업화되고 전문화되어 그래서 매우 복잡해 졌기 때문에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매 순간 우리 문명이 강요하는 평화와 폭력의 선택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좀 더 편리하거나 달콤하거나 자극적인 욕구를 충족하거나 아니면 강요되는 구조 속에서 매번 폭력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를 들면, 불법 아동노동으로 채집된 코코아로 제조된 초콜릿의 달콤함을 소비하는 우리는 반인권적 노동실태를 용인하는 것이다.

경제부흥의 신화(myth) 속에 한국기업이 제조한 최류탄이 민주화운동이 한창인 레바논에 수출되는 것을 용인하다면 우리는 그 최류탄의 직간접적인 사용으로 죽은 39명의 레바논 민주화 투사들의 억울한 죽음을 묵인하고 독재정권을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다.

다국적기업의 플랜테이션을 통해 생산되는 이칼립투스나무(종이원자재)나 팜유(라면 튀기는 기름)를 이용하여 생산되는 제품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소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플랜테이션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민들의 인권과 공동체 파괴 그리고 환경파괴 등의 비폭력적 문제에 침묵하고 비폭력적인 관계를 묵인하게 되어, 결국 우리의 소비를 통해 맺게 되는 지역민들과의 관계는 결코 평화롭지 못하게 된다.

이제는 선언하자. 먼저 스스로에게 선언하자. 조금은 불편하고 덜 달콤할지도 모르지만 폭력적 관계를 지양하고 평화적 실천을 하겠다고. 그리고 폭력적인 관계의 선순환을 위해 사회적 의미를 띠는 작지만 의미있는 실천을 하겠다고. 이러한 작은 평화실천이 모여 문명은 좀 더 인간적이고 평화적으로 전환될 수 있다.

얼마 전 한국과 레바논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한국기업이 제조한 최류탄이 레바논으로 추가로 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동행동에 나섰다.

관련부처를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했다. 대시민 홍보활동을 했고, 기업제품이 해외에서 중대한 인권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면 원천적으로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는 인식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결국 정부는 관련 기업의 추가적인 최류탄 수출의 허가를 보류했다.

이렇듯 평화는 가능하다. 행동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 삶에서 평화를 선언하고 조금씩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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