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는 권한보다 책임이 막중합니다"

▲ 완주산업단지에 있는 ㈜우신산업에서 여산 국중하 회장을 만났다.
울산과 완주·군산에 기업체를 두고 영호남 교류 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쏟아온 ㈜우신산업 국중하(79)회장은 "반드시 아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넘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삶의 궤적과 연관이 있는 말이다. 그는 군산시 서수면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상속을 거부한 후 자수성가한 인물로 지역사회에 정평이 나있다. 12일, 완주산업단지에 있는 우신산업 회장실에서 만나 기업가로서 지역사회의 역할을 물어봤다.

- 기업가로서 살아온 철학은 무엇인가.

우리집 가훈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기 몫을 다하자'다. 식탁에 걸려있는 이 가훈을 아침마다 가족이 읽고 하루를 시작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돈이 없어도 신뢰만 있으면 얼마든지 차입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잘 구분해 실천하면 인생에서 70%는 성공한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지금도 회사에서 버는 돈은 내 돈이고, 강사료 등 기타수입은 내 것이 아니다. 기타 수입은 불우이웃돕기 통장을 따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내 나름의 원칙을 정하는 것이 어렵지 실행하고 나면 보람과 행복이 있다. 직원들 교육에도 좋은 본보기다. 또 내가 회장이지만 회사 일과 개인 일은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래서 신용카드를 2장 가지고 다니면서 개인적인 일에는 내 신용카드를 사용한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보통사람보다 특이한 면이 3가지가 있다.

군산시 서수면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상속거부를 선언했다. 학교 교육의 영향도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상속제도가 잘못돼 학생들의 자립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두 번째는 한국전쟁 직후 대학생 때 영장이 안 나왔지만 자원입대했다. 국방의 의무를 마치면 사회에 나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원입대를 결심한 것이다. 셋째는 독립채산제다. 가정에서 교사였던 아내와 재정 관리를 철저히 독립적으로 해 왔다. 현대에서 정주영 회장을 모시고 살았는데 항상 자기 건강을 잃어버리면 아무 것도 못한다고 강조했다. 백장선사의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는 격언을 실천하려고 지금도 새벽4시에 기상해 일과를 시작한다. 새벽기상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자산이다.

- 기업가와 지역사회의 관계는.

사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자금도 지역에서 차입한 것이고, 기업환경도 지역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책임이 공존한다. 과거 기업들은 어떤 방법이든지 이익을 내는 데 혈안이 됐었다. 그러나 대표이사가 직원들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에 권한이 많고, 책임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아는 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책임은 막중하고 권한이 하나도 없는 것이 기업인이라고 생각한다.

- 지역에서 어떤 역할과 기여를 하고 있나.

㈜우신산업은 '가장 깨끗한 회사, 가장 경쟁력 있는 회사,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회사'를 모토로 삼고 있다. 회사에서 일을 시작할 때 팀장들에게 선창하도록 한다. 이익을 지역사회와 나누기 위해 경제적으로는 전북 신지식인들의 모임 회장과 선도기업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에 있다. 전라북도가 집중 육성하고 있는 전략산업 선도기업은 55개 회사가 참여하고 있다. 기술력과 수출 능력, 성장 가능성이 우수한 기업을 선정해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차별화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고, 여산(餘山)장학재단 이사장, 복합문화 공간인 여산재(완주군 동상면 소재)를 운영하며 지역문화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농담처럼 숨을 쉬기 위해 글도 쓰고 있다. 문학을 하면서 내 스스로 많은 것을 배우고 얻는다. 물론 지역 작가들과의 교류에 신경을 쓰고 모임을 자주 갖고 있다. 장학재단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 처이모가 되는 조금임 할머니가 IMF 때 2억의 종잣돈을 마련해 줬다. 이 분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간호전문대학을 나와 한국전쟁에 참전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평생 독신으로 살아왔다. 장애인 올림픽 탁구·양궁 금메달리스트였던 할머니는 한국의 IMF 위기 때 경영활동에 보태라고 준 돈이 장학금이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신 이름은 절대로 넣지 말라고 했다. 그 뒤 평생 모은 4억을 추가로 줘서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조금임 할머니의 아들과 딸이 되어달라는 의미에서 장학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대학생 때 선발된 수혜자들은 결격사유가 없으면 대학원까지 책임지고 가르친다.

- 세계봉공재단이 출범했는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모금활동은.

어린이재단은 재정이 투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직원만 1,200명이 넘는다. 한해 예산도 1,400억 원이고, 후원금만 1,200억 원이 모인다. 후원금은 결손아동 등 사회적 안전망에서 벗어난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돕고 있다. 모금활동은 후원회장인 탤런트 최불암 씨를 비롯해 이홍렬, 고두심, 추신수, 인순이 씨 등이 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다. 모금활동 역시 마케팅인지라 언론이나 광고 등에 노출이 많이 돼야 인지도가 올라가 모금액도 늘어난다.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후원자 관리다. 연말에 꼭 후원자를 위한 연극을 무대에 올려 잔치를 마련한다. 원불교가 세계봉공재단을 출범하면서 모금활동과 사업방향에 대해 고민이 많은 줄 알고 있다. 서로 교류 협력할 부분이 있다면 도와주고 싶다. 언제라도 자리를 마련하면 도울 생각이다.

- 원음방송 시청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데.

전북 원음방송 김사은 PD와 인연으로 시작됐다.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흔쾌히 허락하고 참여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시청자 위원으로 있다가 위원장을 맡았다. 원음방송은 종교방송이지만 노래 선곡 등을 잘해 평판이 좋은 편이다. 바람이 있다면 종교방송이기 때문에 종교 영역을 좀 더 확대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른 기타 매체와 정보 및 기술교류를 확대했으면 한다.

- 원불교 교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예전 좌산종법사 시절 직원들을 데리고 배알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원불교와 인연의 접점이 많아진 것 같다. 같은 지역사회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나지는 부분도 있다. 여산재에도 많은 교무님들이 다녀갔다. 원불교는 짧은 기간에 정말 많은 일을 해왔다. 원광대학교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원불교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이재단에 관여하다보니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결손가정이나 독거노인 등에 더 많은 배려와 지원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다문화가정에도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익산의 경우는 원광대학교가 다문화센터를 유치해 적극 나선 것은 매우 좋은 선례다. 어르신도 중요하지만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지원도 요청된다. 소외된 계층에 좀 더 다가서고, 낮은 곳으로 임하는 종교가 됐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원불교가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 국중하 회장은 현대건설 기계과장을 거쳐 30대 후반에 현대중공업 상무이사에 오르는 등 흔치 않은 이력을 지녔다. 현대정공·현대건설·현대중공업 상무이사를 역임한 그는 1987년 오십이 넘어 우신공업·㈜우신엔지니어링을 설립한다. 그는 ㈜우영·㈜우신산업을 차례로 창립하며 현대자동차 및 현대중공업의 부품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수필과 비평〉 수필부문 '성지를 찾아서'로 신인상을 수상한 뒤 〈내 가슴속엔 영호남 고속도로가 달린다〉, 〈내 마음의 풍경〉 등 다수의 수필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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