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에 오면 단모임 공부를 위해 단 편성을 합니다. 보통 4개단으로 나누어 정하고 각각의 모임 장소를 알려드립니다. 단 모임에 오신 교도들에게 몇 단이냐고 질문하면 모두 정확히 답변을 합니다. 또 각자의 법명을 묻는 질문에도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을 합니다.

잠시 뒤 '나의 존재에 대한 나의 선언'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부처다!" 하고 외치게 하면 갑자기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변하며 잘 대답하지 못합니다.

남이 지어준 자신의 이름도 확실히 믿고, 남이 정해준 단편성도 그대로 믿고 움직이는데, 막상 나 자신이 부처라는 것에서는 확신을 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습니다. 내 본래 마음은 부처인줄 믿지만, 내 심신작용은 아직 중생의 모습이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당신도 부처다!" 하고 외치며 처처불상을 믿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이것 참 애매~합니다.

그냥 쉽게 믿는다고 하자니, 당장 내가 부처가 안된 것처럼 다른 대상들도 아직 부처가 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가로 막습니다. 그러니 대체로 근본 뜻은 믿지만 미움과 원망의 대상에 대해서는 부처로 보이지 않는다고 많은 분들이 대답합니다. 나도 부처로 믿지 못하고, 상대도 부처로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처처불상 사사불공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언젠가 나중에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되면 그때서야 실천이 가능할까요? 아직 나는 중생이라는 믿음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중생심을 깨우쳐 주기 위해 스승님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침을 주십니다.

정산종사께서는 진리 그대로 화현한 정화신불과 진리 그대로 받지 못한 편화신불을 말씀하시며, '우리의 마음이 청정하고 바른 때에는 곧 내가 정화신불이요 삿되고 어두울 때에는 편화신불이다'고 밝혀주십니다. 다시 말해 이래도 부처, 저래도 부처라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소태산대종사께서는 '믿음은 만사(萬事)를 이루려 할 때에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이라고 정의해 주십니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깊게 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으신 후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의 본래 성품이 일원상의 진리이며, 이 마음이 곧 부처임을 믿고 있는가?
모두가 부처요 모두가 은혜라는 확신을 하고 있는가?

믿음이 결심을 낳고, 결심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어떠한 행태로든지 결과를 낳습니다.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데에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은 곧 나의 선택과 결정의 결과물이요, 내 믿음의 결과물입니다.
내가 부처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가, 아직 중생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가에 따라 지금 이 순간의 취사가 달라집니다.

<삼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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