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회장 하라'는 장모님 말씀 받들고 삽니다"
유무념공부 생활되는 공부 재미
50년 넘은 교당건물 신축 서원

농사 지을 사람이 없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소년은 여름이면 화천을 찾는 원광대학교 형·누나들과 백지명 교무를 손꼽아 기다렸다. 어머니 김화범행 교도(90)는 간난한 살림에도 원불교학과 학생들의 농촌보은활동에 기꺼이 방을 내주었다. 일주일동안 소년은 저녁마다 도란도란 교법을 들었다. 백지명 교무는 "농사도 좋지만 더 배우고 지으면 더 좋지 않겠냐"며 야간학교에 연결해줬다. 동갑들은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나이였지만, 소년은 부끄러움 보다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학교에서 공부했다. 주말이면 화천교당에 나가 법회도 보고 교당 일도 거들었다. 그렇게 이 회상에도 깃든 화천의 만학도, 올해 춘천교당 교도회장을 맡아 신축불사기도에 여념없는 인산 강인수(63·仁山 姜仁秀) 교도다.

"평생 농부로 살 줄 알았지요. 그런데 장모님을 잘 만나 다른 길을 걷게 됐어요." 군대 제대 후 그가 가진 건 화천 골짜기 비탈밭 몇평뿐이었다. 척박한 땅이었지만 그저 감사하며 집과 밭, 교당을 오갔다. 그런 그를 눈여겨 본 사람이 있었으니 원기89년 열반한 화천교당 이향중 교도다. 길도훈 교무·길혜선 정무의 어머니이자 서광덕 교무의 장모, 길용철 교무의 할머니로 교단 명문가 '화천 길씨 집안'의 안주인이었다.

"어머님끼리 정 깊은 법동지셨어요. 재산도 학벌도 변변찮던 저를 사위로 맞아주셨습니다. 가진 것 없어도 원불교 법대로 살 사람이니 괜찮다며 귀한 따님을 주셨지요."

장모님 생각에 살짝 눈물을 보이는 그다. 화천시장에서 '황해한복집'을 운영하며 불모지였던 강원지역 교화역사를 일궈낸 장모는 그를 택했다. 원기62년 혼인 당시 장모의 덕담도 "나중에 더 큰 사람 되어 교도회장 하시게"였다.

"아내 길도영 교도는 농사 한번 안 짓다가 골짜기로 시집왔잖아요. 걱정되더라고요. 그런데 당시 화천 농협에서 직원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아내 생각에 시험을 봤죠."

그간 건국대 등에서 영농기술을 배웠던 경력이 도움되기도 했지만, 근원적으로는 아내에 대한 사랑 덕분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시내 생활'을 시작한 그는 꾸준히 승진을 거듭해 전무에 올랐고, 원기94년 9월 퇴임했다.

"원기84년 화천에서 춘천으로 이사오면서 춘천교당을 찾아갔어요. 사실 그때까지는 순환 휴일근무가 있다보니 법회에 빠질때도 있었는데, 아내가 교당에 못박고 있다보니 저도 따르게 되더라고요. 원기85년부터는 손해를 보더라도 휴일근무를 완전히 빼고 법회에 나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법회는 빠지면 안된다'는 체를 잡은 아내는 타지에 가야할 때도 인근 교당에서 법회를 챙긴다. 일상생활이 곧 신앙인의 심법 활용터라는 그는 두 아들(창균, 준현)의 이름도 집안 항렬 대신 법명 그대로 호적에 올렸다.

"원불교 다니면서 행복하지 않으면 뭐하러 다니겠어요. 배운 것을 생활에서 풀어내는 그 맛 본 뒤로는 안하고 못 배기지요."

이리도 맑게 단언하는 그는 '지금 만나는 모든 인연을 더 낮은 인연으로 떨어뜨리지 말자'는 기준으로 인과를 실천했고, '내가 미워하지 않다보니 누가 날 미워하는지 좋아하는지 모르는' 수준까지 빈 마음을 키워왔다. 특히 유무념공부 덕을 톡톡히 봤다는 그다.

"나쁜 습관을 떼려고 했는데 그것만으론 어렵더라고요. 오히려 대신할 좋은 습관을 들여 저절로 떼지게 했어요.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지 말자' 대신에 '노는 시간에 교전을 읽자'로요. 그랬더니 되더라고요."

한번은 '아내에게 하루 3번 칭찬하기'를 유념으로 삼았다. 3개월이 지나자 변화는 예상치 못한 밖으로부터 왔다. "나도 모르게 무심히 볼 것을 유심히 보는 훈련이 됐나봐요. 회사에서도 교당에서도 사소하지만 감사할 일이 자꾸 보이는 거예요."

은혜 갚는 마음으로 올해 교도회장도 맡았다. 몇차례 고사한 바 있지만 어느날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하는 것은 공부법에 맞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오더란다. 특히 강원교구와 겸하는 춘천교당 건물을 이대로 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컸다. 50년이 넘은 건물이라 2층 대각전에 올라가기 위험해 4축2재때만 사용한지 수년째다. 그는 올해 부임한 김덕관 강원교구장과 마음을 합해 500일 기도를 6일 결제했다.

최근 이곳저곳 후보지를 보러 다니는 그는 개미역사로 신축봉불을 준비하는 한편 내실을 갖추기에도 열심이다. '유무념공부 잘하는 교당'을 위해 전 교도의 유무념 사례발표를 시작하고 첫 순번으로 연단에 서기도 했다.

"몇년 전 아내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이 생 부부의 연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니 내생에는 전무출신 도반으로 다시 만나 교법 펼치며 삽시다'라고요."

더 아름다운 내생의 만남을 위해 큰 결심으로 교도회장을 맡은 그는 신축불사와 공부로 한걸음 한걸음 내생 준비를 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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