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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종사 생애 4 / 원기21년, 가족들과 중앙총부 구내로 이사
대산종사 생애 4 / 원기21년, 가족들과 중앙총부 구내로 이사
  • 서문성 교무
  • 승인 2014.04.04
  • 호수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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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산종사 부친 연산 김인오 대희사.
▲ 대산종사 모친 봉타원 안경신 대희사.
집안 일을 정리하다

원기18년, 대산종사의 나이 20세에 일월(日月)이 합치되는 꿈을 꾸었다. 다음날 아침, 소태산대종사가 이동진화·조전권과 함께 대산종사를 불러 가보니 "그대들 세 사람은 내가 교리 가지고는 걱정 할 것이 없다"고 하며 세 사람에게 모두 견성(見性)인가를 해줬다. 대산종사는 이때 영생을 불퇴전할 서원이 세워졌다.

대산종사는 원기19년부터 상조·공익·육영부 서기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 무렵 사가는 부친이 금광사업을 하다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점점 빚이 늘어가는 어려운 상황에서 실마리를 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대산종사의 정토 이영훈은 시댁의 가세가 기울자 원기20년 봄에 친정에서 시댁으로 들어가 살림살이를 시작했다.

대산종사의 형편을 알게 된 소태산대종사가 "집안일을 정리하고 오라"고 했다.

이리하여 대산종사는 원기20년 9월, 집안의 경제 정리 차 좌포 집으로 가서 가족회의를 열고 "저는 종사님이 파견해 왔으니 저의 의견을 따르시겠습니까?"라고 했다.

가족들이 대산종사의 뜻에 따르겠다고 합의를 하자 6개월 동안 전답을 정리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채를 갚으며 해결했다.

대산종사는 집안일을 정리한 후 원기21년에 부모님께 고향에 남은 농토를 관리하도록 하고 정토와 동생들을 데리고 총부 구내 신영기의 집(현 구정원)으로 세를 얻어 이사했다. 그리고 대산종사는 교무부 서기로 근무를 다시 시작했다.

우주선에 이 한 몸 태우다

대산종사는 원기22년에 제2회 결산서기 및 금융원으로 근무하다가 이듬해에 서무부장 겸 공급부장으로 승진했다. 교단의 간부로 중책을 맡아 업무를 수행하면서 소태산대종사의 〈일원상과 인간과의 관계〉법문 등을 받들며 수필하여 교단기관지인 〈회보〉에 발표했다. 대산종사는 오롯한 적공을 쉬지 않았다. 소태산대종사가 평소에 예화를 들며 법문했던 〈부설 거사 성도담〉 내용 중 게송을 외우기 시작했다.

목무소견무분별(目無所見無分別)
이청무성절시비(耳聽無聲絶是非)
분별시비도방하(分別是非都放下)
단간심불자귀의(但看心佛自歸依)

눈에 보이는 바 없으니 분별이 없어지고,
귀에 들리는 소리 없어 시비 끊어지도다.
분별시비 모든 망상을 놓아 버리고,
다못 마음부처를 찾아 스스로 귀의하리라.

대산종사는 심력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다. 부설 거사의 게송을 오롯이 외우며 적공하며 그 당시 심경을 〈사공(沙工)〉이란 시(詩)로 읊었다.

조그마한 우주선에
이 한 몸 태우고서
다북찬 호연지기 노 삼아 저어가니
아마도 방외유객(方外遊客)은 나뿐인가 하노라.
▲ 대산종사가 총부로 이사하여 세들어 살던 집(현 구정원).
한 지붕 세가족이 살다

대산종사 가족이 세를 얻어 살고 있던 집주인 신영기가 집을 교단에 희사했다.
원기22년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백백교(白白敎)사건이 발생한 후 총부 사무실을 이 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소태산대종사의 배려로 대산종사 가족은 소태산대종사의 사가로 이사했다.

그곳에는 소태산대종사의 정토인 양하운과 자녀들, 딸인 박길선(주산 송도성 정토) 가족이 살고 있어 한 집에 세 가족이 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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