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주방 공유, 공동주거에서 주거공동체로 진화

▲ 마포구 성산동의 공유주택 소통이 있어 행복한 '소행주' 전경.
지방에서 서울의 대학에 입학했을 때, 열아홉들은 그들의 잿빛 미래를 알지 못했다. 혼자인 삶이 신기하고 설레는 것도 잠시, 하숙이든 자취든 밥 안먹고 숨만 쉬어도 들어갈 돈이 수십만원이었다. 운좋게 기숙사에 당첨되어도 한두해 뿐, 결국 집없는 설움에 눈물을 쏟아야 겨우 도시 한구석에 발 뻗을 두어평을 갖게 된다. 직장을 잡아 올라오는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도대체 왜 그리 비싼지 알 수 없는 월세를 꼬박꼬박 내고, 왜 또 올라야 했는지 모를 전세값을 위해 발버둥을 친다. 이 땅의 젊은이 대부분이 나이가 들어서도 겪는 하우스푸어(House Poor),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을) 사기 위해 노동을 하는' 서울살이 잔혹사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전세는 월세로 돌아섰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손에도 못 쥐는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다. 연봉이 높아도 늘 가난한 이유다. 집은 그야말로 '자고 씻는' 공간이 되어가지만, 그 '자고 씻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결국 집없는 이들은 새로운 개념에 눈을 떴다.

일정공간을 공유하는 '쉐어하우스(Share House)'다.

서울살이 잔혹사의 대안 '쉐어하우스'

다수의 사람들이 한 집에 살면서 침실은 따로, 거실과 화장실 등은 공유하는 쉐어하우스는 월세와 공과금을 나누어 내며 높은 집값과 거주비용을 아낄 수 있는 대안이다.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과 인천 등 대학가나 직장인 밀집지역에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름만 낯설다 할 뿐이지 사실 우리 곁에 꾸준히 있어왔던 공동주거와 다를 바 없다. 지방학생들의 하숙집이며 안암이나 정릉, 신촌교당이 운영하고 있는 학사가 바로 쉐어하우스 구조다. 대학가 벽보에 흔히 붙어있는 '잠만 자는 방'이나 '하우스메이트'도 큰 의미의 쉐어하우스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직도 건재한 공동주거 시스템이 '쉐어하우스'라는 낯선 이름으로 확산된 이유는 뭘까. 성북동에 쉐어하우스 '따로 또 같이'를 꾸린 김기민(33)씨의 말에 힌트가 있다. 대학가 원룸에서 혼자 살던 그가 쉐어하우스를 연 것은 의외로 경제적인 이유가 아닌, 어느 비오는 날 자전거를 복도에 들여놨던 일 때문이었다. 비갠 후에도 복도에 있던 자전거가 불편했던지, 누군가가 '불편하니까 치워달라'고 쪽지를 붙여놨다. 아차 싶었던 그는 그 자리에 '알려줘서 고맙다. 근처에서 카페를 하고 있는데 언제든 커피 한잔을 대접하고 싶다'는 쪽지와 명함을 붙여두었다. 명함은 일주일이 넘도록 그대로 있었다.

성북동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던 그는 '정작 내 건물의 옆집이나 윗집 사람을 모르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불신하며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고, 그 역시 그 안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당장 내 문제가 아닌 청년들 모두의 문제, 사회의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때마침 부동산계의 새로운 트렌드이던 다양한 '쉐어하우스'를 연구하며 결론에 이르렀다. '돈을 나누어 내는 동거인 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주거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되 강요와 불편이 되지 않는 '한 집에서 따로 살기'를 추구하는 의미로 이름도 '따로 또 같이'로 지었다.
▲ 성북동 쉐어하우스 '따로 또같이'공유 공간.
비용 나누는 동거보다 함께 사는 공동체

3개의 방에 총 4명이 거주하는 '따로 또 같이'는 2인1실일 경우 17만5천원의 월세와 공과금을 포함한 관리비 10만원을 받는다. 최근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상업적인 쉐어하우스들보다 훨씬 저렴하다. 정확히 유지할 만큼만 나눠 받는 확고한 원칙은 "만약 돈이 남는다면 누군가 주거공동체로 인해 이익을 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같이 사는 삶, 불편하진 않을까. '따로 또 같이' 계약서에는 '1년 단위 계약, 특별한 사유 없을시 연장 가능'과 함께 '정기적으로 밥을 같이 먹는다' 정도가 기재되어있다. 공동의 집안일은 신경쓰이는 사람이 먼저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있다. 그가 먼저 화장실이며 부엌을 청소했더니 이내 암묵적으로 일요일 아침은 함께 청소하고 같이 밥을 먹는 것으로 자리잡혔다. 그는 "혼자 사는 것보다 같이 사는 게 물론 편하진 않지만, 편한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고 말한다. '편리가 곧 최선'이라는 착각이 개인주의를 넘어 이 땅에 만연한 이기주의를 낳고 있는 현실을 짚은 것이다.

그에게 쉐어하우스란 '같이 사는 사람의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의 주거공동체'다. 멀리 보면 그가 추구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밑그림이 이 '따로 또 같이'에서 그려진다. 서로의 존재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아낄 때 비로소 삶을 누릴 여유가 생긴다는 믿음이다.
▲ 성북동 쉐어하우스 '따로 또같이'에서 공유하는 주방.
높아지는 비용과 입주자 검증 부작용

최근 한 기업의 보고서는 1인 가구가 일시적인 사회현상이 아닌, 기업과 국가 차원에서 대처해야 할 변화라고 밝혔다. 국내 1인 가구는 이미 지난 2012년 전체 가구수의 25%에 육박했으며, 2035년에는 35%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된다. 1인 가구가 가장 고민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대상이 바로 주거로, 최근 불어오는 쉐어하우스 열풍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열풍에는 부작용도 따른다.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하는 쉐어하우스 비용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포구의 'S' 쉐어하우스는 1인실의 경우 보증금 120만원에 월세 59만원, 2인실은 인당 보증금 80만원에 월 39만원으로 입주희망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또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과 확인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월세에만 기준을 맞춰 입주자를 받는 한 곳은 입소문에 의해 계약 해지가 줄을 잇고 있다.

주거는 인간의 당연한 권리이자 기본적인 본능이다. 이에 경제적 효과와 사람들간의 정을 얻을 수 있는 쉐어하우스의 인기는 계속될 것이다. 더불어 환경이나 예술, 종교 등 아예 특정한 목적을 두고 주거공동체를 꾸리는 곳도 늘어날 전망이다. 시대를 읽는 혜안과 유연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삶에 가장 가까운 주거분야에 속속 들어오고 있다.

⊙ 주목 할 만한 쉐어하우스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 한 집을 나눠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집이 식당, 놀이방 등을 공유하는 공유주택. 마포구 성산동에 9가구가 1호를 시작했으며 강북구 수유동에 5호가 입주예정이다.

두레주택 - 서울시가 마련한 국내 첫 공동생활형 공공임대주택. 지난해 11월 5가구를 모집한 도봉구 방학동에 이어 구로구 온수동, 금천구 시흥동 등 21개 동에도 조성하고 있다.

민달팽이 유니온 - 청년주거의 안정화와 보편적 주거권 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시민단체. 3월 주택협동조합을 창립, 출자금으로 주택을 매입 또는 임차해 조합원에게 일정 기간 저렴한 임대료에 공급할 예정이다.

쉐어하우스 WOOZOO - 국내 최대의 쉐어하우스로 창업가, 미술가, 여행, 요리 등 각각 집마다 다른 컨셉으로 운영된다. 종로구 권농동을 1호점으로 동대문구 제기동에 11호점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까지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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