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신앙생활, 자손대대로 이어져 귀감
어린이집 조리사로 교당 살림 알뜰히 살펴

계룡산 줄기를 따라 향적산을 등져 있는 도곡교당은 광석리, 향한리, 도곡리에 있는 교도들이 주축이다. 옛 신도안 시절, 오솔길을 따라 싸리재를 넘나들며 스승님의 법문을 들었던 교도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교당을 지키고 있다. 도곡원광어린이집에서 조리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은정 교도(52). 그 역시 시조부 때부터 3대째 원불교를 신앙하고 있다.

"제가 시집왔을 때 시할머니인 임해방화 교도를 비롯해 이모 할머니, 시부모까지 다 알뜰한 교도로 신앙하고 계셨습니다. 시아버님은 저를 며느리로 삼기 전에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부터 물을 정도'로 신앙심이 대단했지요. 다행이 친정 쪽이 불교를 신앙해 와서, 첫 면접에 합격한 후 일사천리로 혼사가 진행됐지요. 시아버님은 조카 결혼식이 육일대재와 겹치자 교당 의식을 먼저 참석하고 제일 나중에 결혼식에 올 만큼 철저히 교당과 맥을 대고 사셨습니다."

사실 그의 시아버지(최원승 교도)는 도곡교당 교도회장으로 마을 교화와 교당 대소사를 챙기면서 도곡 지역에 교법을 전하는 데 전력했다. 도곡교당이 생기기 이전 신도안 신도교당과 인연으로 시작된 이곳 교화는 대대손손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 그는 교화단 단장을 맡고 있으면서 법회 참석을 독려하는 문자 메시지 보내기, 점심 공양, 순교까지 도맡아 교화를 보조하고 있다. 그의 옆에 있던 최덕신 교무는 "요리 솜씨도 좋고, 무슨 일이나 순발력 있게 대처한다"고 칭찬했다.

"평소에는 어린이집 점심과 간식을 준비하느라 시간이 많이 없습니다. 간식을 미리 준비해 놓고 교무님께서 원할 때 함께 마을 순교를 나갑니다. 토요일만 빼고 교당과 어린이집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당과 한 몸이 된 느낌입니다."

그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사람은 바로 남편 최위정 교도다. 이들 부부는 최근 농기계를 차에 실고 태백교당 밭갈이 봉사를 다녀왔다. 왕복 8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다녀온 것이다. 그만큼 교당의 일을 내 일처럼 대하는 것에서 알뜰한 공심을 읽을 수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사용하는 간장과 된장 등은 집에서 직접 기른 콩으로 만듭니다. 충남교육청에서 제공되는 식단표에 맞춰 로컬 푸드와 토속적인 음식을 아이들에게 내놓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제가 내놓은 음식을 좋아하니 아이들도 따라 잘 먹습니다. 국산 재료만 고집하면서 아이들의 면역도 좋아지고, 선생님들도 건강해졌습니다."

그의 말대로 어린이집 냉장고에는 오래된 재료나 냉동식품이 보이지 않았다. 부엌 냉장고에는 신선한 식재료만 가득했다. 그 덕분에 교당의 식탁도 자연밥상이다. 뿐만 아니라 법회 후 교도들에게 제공되는 공양 역시 그의 텃밭에서 나온 싱싱한 채소와 나물들로 채워진다.

그의 고민은 잠자는 교도들의 닫힌 마음이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교도들이 있어요. 그동안 마음을 닫고 살아서 교당과도 멀어진 것이지요. 그래도 만나고, 또 만나면서 조금씩 묵은 교도들의 마음이 풀어지고 있어 희망적입니다."

이렇게 교당과 어린이집에 온통 시간을 투자하다보면 집안일을 돌볼 겨를이 없어 보였다. "어린이집이 직장이다 보니 집안일은 주로 퇴근 후에 합니다. 1남 1녀 자녀들도 다 성장해서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아 다행히 교당에 봉사할 수 있습니다. 교화는 사람을 만나야 되는 것이지요. 이 지역은 신도안과 가까워서 원불교를 익히 알고 있고, 평판이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교화지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예전 논산시 계룡읍에서 따로 계룡시로 승격되면서 교당 이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말한 그는 당시 교당 이전이 좌절되면서 교도들의 상실감이 컸다고 말했다.

"우리 교당이 계룡시에서도 약간 외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 군사도시인 계룡시가 승격될 때 시내로 나가자는 의견이 많아 이전 부지를 찾아보는 등 노력을 했지요. 그런데 다른 지역교당이 연원교당을 계룡시에 내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시에 있으면서 교도들과 상의도 없이 결정을 하니까 여기 교도들은 무시당한 느낌을 받았지요."

농촌교당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잠자는 교도를 깨우는 데 정성을 다하고 있다는 그의 말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어 본다. 김 교도와 남편은 며칠 전에도 석존성탄절을 맞아 법당에 연등작업을 6시간 동안 자원 봉사했다. 연등작업은 수작업으로 해야 할 것들이 많고, 사다리를 오르내리기를 해야 하기에 수고로움이 적지 않다.

"신도교당 심익순 교무님이 김공원 교도의 자택에서 출장법회를 보면서 시작된 도곡교당은 교법의 은혜를 많이 받은 곳이지요. 역대 많은 교무님들이 거쳐 가면서 마을 교화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대대로 이어져 오는 신앙을 갖고 사는 교도들과 행복한 교당 공동체를 일구면서 살고 싶습니다."

교법을 신봉했던 조상들의 후손으로 신앙의 맥을 놓지 않고 사는 그의 모습은 흔들림 없는 신앙인 모습 그대로였다. 생활 터전이 교당과 연관되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헌신과 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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