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종사, 한국전쟁 때 총부 지켰다

4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다. 16일 오전, 476 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병풍도 부근에서 침몰하여 사망자와 실종자 수가 300명이 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대부분 수학여행을 떠나던 어린 고등학생이기에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사고 초기에 지체되던 실종자 구조작업이 본격화되었지만, 생명구조시한의 한계점에 달하면서 사망자의 수도 점점 늘어났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실종자에 대해 실낱같은 희망으로 기도밖에 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비통한 마음과 분노를 함께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위기대처능력에 대한 시험대이며 사회적 문제점을 단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전에 대한 불감증, 비리의 고리와 봐주기 관행, 위험에 빠진 승객을 놔둔 채 먼저 퇴선한 무책임한 선장, 무엇보다도 한국정부의 미숙한 대처능력은 국민들의 작은 희망들을 절망과 분노로 빠뜨리고 있다.

작은 희망이 거듭 좌절되면 그 희망은 절망이 되기 쉽다. 작은 절망이 거듭되어 쌓인 원망과 분노는 어떻게 분출할지 모르는 일이다. 인류역사 가운데 화려한 로마문명과 몽골과 같은 대제국도 안으로 불신과 갈등이 일어나고 외부로부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때, 일시에 파멸의 길을 걸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모두 참회하고 우리사회와 교단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먼저 희생자와 그 가족에 대한 시민·종교계의 자발적인 애도기간을 갖자. 희생자와 그 가족의 깊은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길은 모두 함께 슬픔을 나누는 공감의 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본과 상식에 충실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한국사회의 기본적인 신뢰가 무너져 가고 있다. 위험에 대한 불감증이 만연해 있다. 불이 나도 소방차가 지나갈 수 없는 주차장으로 변한 좁은 길, 사회적 비리의 고리와 봐주기 관행, 대부분의 대형 금융사고 등은 정치권력과 비호세력과 연계되어 왔다. 지금 사회는 병들어 있다. 이를 치유하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신뢰를 쌓아가는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무책임한 선장은 수많은 생명을 놔둔 채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자 먼저 퇴선하였다. 반면,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의 탈출을 끝까지 돕던 여승무원 박지영 씨와 선생님들 가운데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고자 자신의 생명을 바친 의로운 희생자들이 있다. 이 모두가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절대적 위기상황에서 국민들은 정치지도자 및 사회지도자들을 얼마나 신뢰할 것인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을 끝까지 사수하겠다던 대통령과 정치지도자들은 서울시민을 볼모로 한 채 몰래 도망쳐 버렸다. 사회문제를 책임지는 성실한 지도자,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실천만이 정치적 지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우리 교단의 역사에서, 정산 송규 종사는 종법사 재위시절 한국전쟁의 위기상황에서 거의 모든 제자들을 각지로 피난가게 한 후, 익산 총부에 남아 고초를 당하면서도 교단을 지켰다. 위기상황에서 교단 지도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책임 있는 취사는 오늘의 원불교를 있게 한 결단이다. 교단과 사회 모두가 위기상황에 대한 책임 있는 대처와 관리 능력이 필요한 때이다. 신뢰받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이다.

<원광대 원불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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