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원은 성불제중입니다"
"네가 성불하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성불시켜라"

▲ 이성택 교무/ 새등이문화원
이성택 교무가 대산종사를 처음 만난 것은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원기47년 대구교당에서 원불교생활을 시작한 그는 얼마 후 대산종사께서 서성로교당에 오셨다는 말씀을 들었다. 당시에 건강이 악화되서 쉬러 오신 것이었다.

그는 "대산종사는 한적한 서성로교당으로 건강을 조절하기 위해 오셨다. 그 당시에 대산종사는 건강이 많이 악화되셔서 밥 한숟가락을 드시는데도 30분의 시간이 걸렸다. 밥 한알 한알 드시기에도 많이 힘드실 정도로 건강이 많이 안좋으셨는데 그때 당시 주치의였던 후암내과 권현각 원장의 발심을 나게 하셨다.

권현각 원장은 원불교를 '나는 내 일생과 영생을 책임질 수 있는 종교를 만났다'고 표현했다. 밥 한숟가락 드시기도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주치의를 제도입문에 들게 한 것, 바로 성현의 위력이 아니겠느냐"고 일화를 소개했다. 교단의 미래를 생각해 대산종사 스스로 일어서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배어있는 삶이 감동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는 두 번째로 남한강사건이 있었던 때를 회고했다. 4학년 2학기 고시를 끝낸 후 였는데, 남한강 사건이 생기면서 교무들이 대각전에 모여서 3일을 주야불구 회의를 하고 교단사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는 "동기들과 함께 고시가 끝난 후 남한강사건에 도움이 되고자 새끼꼬는 틀을 빌려서 짚을 꼬았다. 새끼를 잘 꼬아서 남한강 사건에 성금으로 도울 생각이었다. 하루에 12~13타래씩 열심히 새끼를 꼬았는데 어느 날 대산종사께서 오셔서 '너희들의 정성에 큰 감동을 받았다. 너희들의 정성 한푼 한푼이 교단이 일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하셨다. 그러시더니 나를 데리고 산업부 농장으로 가시더니 '원불교 원예원을 만들려고 한다. 졸업하면 원예원에 와서 일을 하거라'고 말씀하셨다"며 그가 원불교에서 받은 첫 사령장이 '산업부 원예주무'가 된 것이 대산종사의 뜻임을 설명했다.

또한 대산종사께서 '원을 세웠느냐'고 물으신 일에 대해 "제 원은 성불제중입니다"하자, "니가 성불하려 하지말고, 다른 사람을 성불시켜라"고 말하셨다고 소개했다.

사람이 사는 삶 속에는 법과 인정의 갈등관계가 있다고 말한 그는 "기숙사에서 총 18년동안 사감생활을 했다.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있어 법, 인정 이 두 가지에 갈등이 많이 생겼다. 인정에 치우치다보면 법이 죽고, 법을 세우려고 하면 인정이 소홀해졌다. 내 삶은 항상 법과 인정은 갈등관계였다. 이를 고민하던 중 대산종사께서 어른들과 교류하시는 과정을 보며, 법과 인정 두 가지 모두에 소홀함이 없으심을 깨달았다. 대산종사께서는 법위에 세운 인정, 인정으로 활용하는 법을 깨닫게 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산종사의 법문을 소개하며 대산종사에 대한 그리움을 표했다. "대산종사께서는 교단을 이끌어오신 선진으로서 법과 인정 두 가지에 소홀함이 없는 훈훈한 교단생활을 해오셨으며, 그 전통을 우리에게 남겨주셨다. 대산종사는 법을 인정하고 활용하며, 법을 통해 인정이 살아나도록 심법과 행적을 그대로 나투어주신 어른이다. 기틀을 통해 어른의 심법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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