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지간, 전신전수가 돼야

대종경 신성품 14장에서는 '대종사께서 제자로서 스승에게 다 못할 말이 있고 스승이 제자에게 다 못해 줄 말이 있으면 알뜰한 사제는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학부시절 한참 사심과 정심이 왕래할 때 스승께 여쭸다. 스승께서는 마음에 사심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인정해 주고 당신 스스로에게도 나이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아직 어린 제자에게 전혀 가식적이지 않고 너무나 사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시는 모습에 어떤 분별도 생기지 않고 두 마음 없이 오롯한 신을 세웠던 것 같다.

이후 마음에 사심이 생겨 힘들 때마다 내안에 일어난 사심에 대해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스승께서는 나무라지 않으시고 '그랬냐' 한마디만 해주신다.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그 사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음을 경험했다.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모 교당에서 모시고 살때는 어찌나 야단을 많이 맞고 살았는지 모른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간사가 잘못해도 야단치고 교당 분위기가 조금 안좋아도 혼내시는 통에 살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의 바람은 빨리 스승의 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어느날 선배가 와서 보고 자기도 이상했던지 스승께 나를 혼내시는 이유를 여쭈니 지혜는 키워야할 싹이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 말을 선배로부터 전해 듣고 이후에는 어떤 꾸지람도 꾸지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지금까지는 우리 스승께서는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되어진다.
가끔 교도들에게서 서운한 마음을 찾을 때가 있곤 한다. 교도들은 교무니까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을거라 생각을 하는 듯 하다. 앞뒤 생략하고 핵심만 전달하는 식의 말을 던질 때면 당황되고 실제 곤란한 지경에 이를 때도 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상(相)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상이 남아 있고 더 두터운 업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교무에게는 그것이 상처가 되어지지만 말은 못한다. 그런 경험이 몇 번 있고 보면 교도와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이 생겨있음을 느끼게 된다. 속 깊은 마음을 연하는 것이 아니라 교무와 교도로서의 기본적인 관계만을 유지할 뿐 법정으로 두터워지는 관계는 되어지지 않는다.

교무와 교도가 알뜰한 사이가 되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교화가 될 것이며 그곳에 신심 공심 공부심들이 들어갈 것인가. 어떤 이유였든지 어떤 상황이 되었든지 결국 자기 공부는 자신 스스로가 하는 것이기에 나의 스승과 심심상련이 되어졌듯이 교도들과 심심상련이 되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대산종사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전신전수(全信全受)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사제지간에 창자를 이어야 법이 전해지기에 회상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창자를 이어 법을 전할 수 있는 제자 한 사람만 있어도 일생에 경사가 아닐 수 없다고 하셨다.

<포천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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