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태산대종사 열반 후 중앙총부 대각전에 빈소를 마련하고 장례 일체를 진행했다. 발인식 진행 중.
법문을 듣기만 해라

원기24년에는 교무부장으로 전임되어 역할에 충실하며 오롯한 적공을 하는 한편 소태산대종사의 법문을 수필해서 〈회보〉에 발표하기도 했다.
대산종사가 법문을 수필하는 것을 본 소태산대종사가 기록하지 못하게 하며 "잘 듣기만 해라"고 했다. 그래도 불안하여 법문을 요약해서 갖다드리니 역시 기록을 하지 못하게 하며 "앞으로 네 머리에서 다 나올 것이다"라고 했다.

후일 〈대종경〉을 초안하려고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소태산대종사께 받든 법문들이 솟아났다.
대산종사는 원기26년에 교무부장에서 감사부장으로 전임됐다. 이즈음 서대원이 불경공부를 많이 해서 소태산 대종사를 보필해야겠다는 뜻으로 얼마동안 산중 사찰로 들어갔다.

소태산대종사가 크게 꾸중하였고, 총부 대중들도 그를 규탄했다. 총부 대중들이 회의를 열어 그를 교단에서 제명 축출하기로 결의한 「제명결의서」를 대산종사가 가지고 소태산대종사에게 갔다. 제명결의서를 본 소태산대종사는 크게 호통을 치며 "이 종이를 곧장 한 점 재도 남기지 말고 불살라 버려라. 내가 아무리 대원이를 꾸짖는다 할지라도, 그대들은 나에게 대원이가 잠시 입산한 뜻은 결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회상을 위한 것이니 용서해 달라고 해야지, 내보내자는 회의를 하다니 그렇게 내 뜻을 모르고 동지애도 없다는 말이냐?"고 했다.

대산종사는 소태산대종사가 평소에 "너희가 나를 버리고 가면 모르거니와 내가 버리지는 아니할 것이다"라고 한 말씀이 떠올라 한없는 대자대비를 느꼈다.

중근을 조심하라

대산종사는 원기28년에는 총부 교감 겸 예감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교무부장 업무를 대행했다.

소태산대종사는 교리를 도식(圖式)으로 그려 원기17년 발간한 〈육대요령〉에 이어 원기 28년 1월, 새로 정한 교리도(敎理圖)를 발표했다. 소태산대종사는 수도하는 사람의 근기(根機)에 대해 설명했다. 그중 중근기의 병증과 말로, 벗어나는 방법을 간곡히 설명하며 몇 사람의 이름을 일일이 부른 후, 대산종사를 부르더니 "너도 크게 주의하라. 만약 중근기를 벗어나면 큰 도인이 될 것이지만, 그러지 못하고 중근기에 떨어진다면 다시는 제도 받지 못하고 큰일 날 터이니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고 했다.

대산종사는 소태산대종사가 자신을 지적하며 '크게 조심하라' 하자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그로부터 서원을 반조하며 적공에 적공을 거듭하여 중근을 벗어났다.
▲ 소태산대종사가 교리도를 발표할 당시 원기28년 전무출신.(사진 3번째 줄 왼쪽에서 2번째가 대산종사)


대거를 사표 삼아라

소태산대종사가 조실 앞을 지나는 안이정을 불러 "너의 마음 가운데 사표로 모시는 스승이 누구냐?"라고 물었다. 안이정은 의심할 것 없이 "정산(송규)과 주산(송도성)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소태산대종사가 "네 말이 옳다"고 하고 다시 "정산과 대거(대산종사)를 사표로 모시고 살아라" 하며 "대거가 공부길을 잡았느니라"고 말했다. 안이정은 의심이 생겨서 "주산은 어쩝니까?"라고 여쭈니 "주산도 있지만 그렇게 해라" 하여 의문이 더욱 커졌다. 이 말이 의두가 되었으나 송도성이 40세에 열반에 들자 비로소 의두가 풀렸다.

소태산대종사는 이와 같이 대산종사가 큰 법기임을 제자들에게 자주 인식시켰다.

원기28년 6월1일, 대산종사 30세에 소태산대종사가 열반했다. 치상절차를 마무리한 후 정산 송규가 종법사위에 올라 교단을 이끌어 안정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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