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휴식주는 환우보호사

▲ 김재성 원무/가락교당
이제 만 69세다. 3년 전, 원무를 지원하여 원기96년 5월 '은혜호스피스 원무'로 사령을 받으면서 종법사께서 내게 '지장보살이 되라'하명했다.

교단 내에 〈대종경〉 천도법문을 바탕 한 호스피스사업을 제도화해 보겠다는 서원을 실현시키기 위해 원100성업회의 교화개혁 분과위원으로도 참여했지만 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

교화는 밖으로 해야 하는 분야건만 교도위주의 수행과 공부위주로 돼 있고, 보은봉공은 사대봉공을 균형 맞게 해야 하는데, 안으로 교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여 교단사업에 공심을 받치다 가족을 챙기는 데는 서운함이 쌓여, 정작 공심과 신심 있는 교도는 가족에게는 냉대를 받게 되는 상황도 생긴다.

대산종사께서 4대봉공회를 설립하라 하셨는데, '재가봉공회'를 실현시킬 방법은 없을까?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 병들고 나이 들어 자력이 없고 병들어 고통이 심해지면 사랑이 증오로 변하듯, 항마도인이라도 신심은 서글픔으로 바뀌고, 공심에는 실망과 원망심이 싹트기 시작하여, 진리를 모르는 사람보다 오히려 더욱 괴로운 시달림과 갈등을 겪게 된다.

도반이 함께 동무하며, 투병 중에 생사해탈과 생사자유 해가는 수행과정으로 호스피스 제도를 꼭 재가봉공의 한분야로 개발하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퇴임하는 나이에 원무를 각오했다.
내가 호스피스를 만나게 된 것은 1994년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에서 하는 호스피스교육에 참가했는데, 호주의 알폰스 덱켄 신부의 강의 중에 "불교는 호스피스에는 관심이 없고 죽으면 천도재를 지내주고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것이 전부다"라는 말을 들었다.

원불교도 아직 호스피스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었던 시기였고, 완전 부정할 수는 없다. 교단에서도 1995년 원불교 호스피스회를 창립하게 됐다. 나는 고려대 사회교육센터에서 호스피스교육을 이수했고, 1996년 3월 서울교구 은혜 호스피스회 창립시 회장단의 소임을 맡게 됐다. 이 때 시행한 첫 교육에 100여명이 의욕을 가지고 수료했으나, 막상 알고 보니 더욱 힘들고 어려워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도 직접 10년간 병원봉사도 했고, 15년 동안 봉사자 교육을 시켰지만 교도들에게는 직접 도움이 안 됨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대종사의 '천도법문'을 실현할 좋은 방안이 없을까?' 과제로 연구하다가 '요양보호사제도'에서 힌트를 얻게 됐다. 우리 도반끼리 정신적 의지처가 되어주고, 가족들에게 휴식을 주는 환우보호사 제도를 만들면, 환우를 방문해 동무하여 주고, 내가 병들면 또 나를 동무해줄 도반의 도움을 받는 약강이 진화하는 고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장기투병인, 말기환자들에게 처음에는 교무와 함께 방문하고, 그다음부터는 일주일에 한번 두 시간 정도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환우와 동무하는 제도이다. 환우보호사는 요양보호사처럼 당장에 경제적 수입은 없다. 인과의 진리와 불생불멸의 진리를 믿고 상생의 인연을 지어갈 줄 아는 사람은 유익한 각종 보수교육을 받고 자기 진화도 해가는 것이 환우보호사 교육이다. 이 제도를 더욱 굳건히 확립시키기 위해 퇴임을 할 나이에 올해 또 원무를 재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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