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몸으로 겪는 노동은 그것이 아무리 고생스럽다 해도 그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어지면 얼마든지 감내하고 극복해 나갈 수 있으며 그 고생마저도 행복한 삶의 과정으로 포장하기까지 한다. 반면 우리 공부인들은 눈에 보여지는 보상이 없어도 처한곳이 아무리 진자리여도 힘든 경계가 경계가 아닌 오로지 공부할 때임을 알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고 은혜를 찾는다.

그 길이 스승과 함께 가는 길이라면 더더욱 소중하고 보람된 은혜 일 뿐이다. 요즘 계속해서 찾아오는 삶의 고난스러움에 힘겨워하는 교도들이 있다. 교당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가정에서 있어지는 가례도 교당에서 모실만큼 교당과 가까이 하는 교도인데 어려운 걱정거리가 연이어 생기고 보니 오히려 교무인 내가 그 교도들의 신심이 물러나지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이다. 다행히도 이런 우려와는 달리 경계에 속지 않고 오히려 공부심을 챙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이 법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는 말을 전한다. 왜 대종사께서 이 법을 가져다가 실제 생활에 응용하라고 했는지 자기를 위해 이 법문이 생긴 것 같다며 경계를 만나면 대조할 법이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공부의 진진한 맛을 제대로 보는 교도의 모습에서 일원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대종사께서는 "이 공부와 사업을 하기로 하면 먼저 굳은 신념과 원대한 희망으로 어떠한 천신만고가 있을지라도, 이를 능히 초월하여 모든 경계를 항상 낙으로 돌리는 힘을 얻은 후에야 한 없는 세상에 길이 낙원의 생활을 계속 할 수 있으리라"고 말씀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힘들면 그곳을 벗어나려는 생각을 먼저 했었다. 육신의 힘듦은 얼마든지 견뎌 낼 수 있는데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 이것 저것 끌어다가 짝짓기 하면서 내가 그곳에서 벗어날 타당한 이유들을 찾곤 했었다. 마음에 공부심이 없으니 그 어떤 것도 힘들게만 느껴질 뿐 그곳이 나를 키워주고 있는 삶의 꽃자리임을 알지 못했던 어리석은 순간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아니기에 더욱 힘들고 어렵다는 것쯤이야 출발 전 부터 각오는 하고 있었다. 20년 전 출가식때 당시 좌산종법사는 "가난이 축복이요, 고독이 행복이라"는 법문으로 첫 출발하는 우리들에게 각오를 다지게 했었다.

환경이 날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힘들어 하고 있음을 알고 보니 한평생 변함없는 모습으로 이 회상에 전무출신한 선진들의 모습이 얼마나 존경스럽고 장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존경할게 없다고 생각했던 교무도, 촌스럽다고 무시하던 교무도, 품위 없다고 눈치를 했던 교무도, 더 이상 내가 비난하고 평가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 교무들의 일생을 이 회상의 바탕이 되고 터전이 된 그 자체로 너무나 소중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온 선진이요, 우리 교무라는 감동에 희열을 얻게 된다.

<포천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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