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대로 지키다보면 자연 깨달음 얻어

고등학교 시절 버스를 세 번 갈아타야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오려는데 버스 회수권이 없는 걸 확인하였습니다. 비상금도 없어서 결국 집까지 걸어서 오게 되었습니다. 계문에 심교간 금전을 여수하지 말라는 대목이 있어서 그 제목에 걸려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서 차를 타고 올 생각을 접은 것입니다. 2시간 남짓 걸어가며 내심 계문을 지키는 자신에 대한 뿌듯한 마음도 있었으나, 동시에 불량배를 만날까 두려운 마음에 빠른 걸음을 재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연고 없이'라는 표현을 이해를 못하기도 하였고, 지금 생각해보아도 참 고지식했던 것 같습니다.

간사시절 회식 때 삼겹살이나 통닭을 맛있게 먹는 도반들을 보면 이해가 안되고, 횟집에 가서 살아있는 물고기를 보며 '맛있겠다'며 군침을 흘리는 사람들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제가 어느 순간 건강에 필요하다는 연고에 중독되어 그 생명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이 정신을 못 차리고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소태산대종사께서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어도 이대로만 잘 지키면 우리의 심신을 원만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삼십계문을 내려주셨습니다.

한꺼번에 지키려고 하면 부담스럽고 오히려 퇴굴심이 날수도 있으니 공부의 단계를 따라 순서대로 10계문씩을 주셨습니다.

특히 다른 종교와의 차이점은 '연고 없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죽이면 안되는 교리에 따라 아예 군대를 거부하고 징역을 사는 종교신자들은 그 한 부분의 신념에 대해서는 대단하다고 인정하나, 국민의 의무를 지키지 못하는 폐단이 생기게 됩니다. 원불교에서는 출가자 뿐만 아니라 재가교도들까지도 삶속에서, 직장생활하면서도 융통성 있게 계문을 지키게 하신 점입니다.

단, 서원, 공중사, 대의, 정의, 어쩔 수 없는 직업, 건강문제 등의 연고는 필요하지만, 내 욕심과 내 감정과 내 어리석음을 연고로 착각해 자행자지로 계문을 지켜서는 안됩니다.

우리 중생의 마음은 꼭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은 하고 싶고, 꼭 해야 할 일은 하기가 싫습니다. 그래서 계문은 왠지 구속받는 것 같습니다.

횟집의 물고기들과 살충제로 죽어가는 모기나 벌레들을 보며 어떤 마음이 생기는지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계문은 하지 말라고 하며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못하게 함으로써 육도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강급에서 벗어나 진급의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순서대로 지키다보면 자연 깨달음을 얻고 참 자유를 얻게 됩니다.

계문은 행복한 구속입니다.

<삼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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