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상태의 남북관계, 새로운 돌파구 절실합니다"
북한과 한약재 무역으로 통일에 기여
종교계, 통일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신록의 계절, 어느새 감꽃이 지고 있다. 연초 '통일은 대박이다'고 언급했던 대통령의 말은 세월호 참사 이후 이렇다 할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거창한 통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민족 간의 교류협력은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정치적 안보적인 문제로 금강산관광이 막힌 지도 6년이 지났다. 남북교류의 상징이었던 금강산관광이 하루빨리 재개되길 기원해 본다. 앞이 안보이는 남북한의 정세에, 그동안 무역을 통한 통일을 꿈꿨던 교도가 있어 대전 유성으로 향했다. (주)한신고려 대표인 여진세 교도(53).

"2000년 6·15 선언 직후 한백무역을 시작했습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를 줄인 한백무역은 그 후 2006년 (주)한신고려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북한 한약재를 들여오게 됐습니다. 북한에서 가져온 한약재는 경동시장이나 영천, 금산 등 도매상에게 공급했죠."

그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에 발맞춰 한약재를 특화해 남북무역을 주도했었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이 있기 전까지 줄기차게 성장하며 무역확대를 꿈꿨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남북무역이 급격하게 줄어들더니 급기야 완전 중단이라는 사태를 맞은 것이다.

"남북한 거래를 '반입반출'이라고 하는 것은 민족 간 내부거래이기 때문입니다. 남한과의 거래는 단동대표부가 총괄하고 있습니다.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아연이나 석탄, 마그네시아 클링커, 납 등으로 무역확대를 추진했습니다. 특히 마그네시아 클링커는 세계최대 생산국으로 북한에서는 하얀 황금(白金)이라 불리며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광물입니다. 그런데 남포항과 인천항, 나진항과 부산항 직항노선이 폐지되면서 더 이상 사업 추진이 어렵게 됐죠."

그가 남북교류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입학원 부원장과 강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서울에 유명학원 사회과목 강사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누구보다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6·15선언 이후 통일관련 단체에 소속돼 북한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체감한 것은 정치보다는 사업으로 남북교류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평소에 가졌던 통일에 대한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늦추지 말고 빨리 시작하자는 결론이 나서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죠."

사실 그가 민족의 통일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것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육군교도소(일명 남한산성)에서 옥고를 치렀고, 이후 사회과목 강사로 학생들에게 현대사를 가르치면서 누구보다 분단체제의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은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북한관련 전공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청년시절 꿈꿨던 것은 민주화와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실현됐다면 통일은 아직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죠. 나라의 지도자는 어설픈 정책이 아니라 민족이나 국가의 운명을 가늠할 수 있는 통일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지도자가 대통령이 돼야 하고요. 정부의 기조와 상관없이 지방자치단체가 조금씩 남북문제를 뚫기 시작했습니다. 반관반민(半官半民) 형태로 지자체의 이름으로 민간기업이 참여하며 실리를 취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는 충남의 금산인삼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개성인삼은 홍콩에서 대접을 받고 있지만 재배기술이나 토양 만들기, 가림막 등이 매우 열악합니다. 이런 분야에서 남한이 연구개발에 협력하면 서로 도움이 됩니다. '고려인삼'이라는 상표로 세계시장에 나가면 더욱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충남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북한과의 교류협력 사업에 있어 그의 아이디어는 끝이 없었다. "중국산 농산물을 대체할 수 있는 곳이 북한입니다. 가령 개성 연백평야에 대규모 원예시설과 가공공장을 설치하면 엄청난 야채를 신선하게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서울 가락동농산물시장에 새벽까지 배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바로 경매에 붙일 수 있죠. 이것은 민족경제에 서로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교단의 전향적인 자세를 주문하기도 했다. "실속있는 사업의 파트너인 북한과의 교류를 미시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관심을 두고 꾸준히 추진해야 하죠. 특히 교단에서도 민족문제라는 거대담론보다는 실질적인 교류협력 분야에 관심을 둬야 합니다. 한 가지 더 주문한다면 북한을 좀 더 너그럽게 바라봐 줬으면 합니다. 기존의 틀에 안주하면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군사정권 시절에 종교계가 민주화에 앞장선 것처럼 교착상태인 남북문제도 먼저 뚫고 나가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현재 그는 본업인 북한관련 사업이 중단되면서 유아교재 깨비키즈를 운영하고 있다. 유아교육의 동영상과 콘텐츠를 활용해 유아교육기관에 교재를 공급하면서, 하루빨리 남북한 교역이 풀리기를 염원하고 있다. 중국 집안시 고구려 유적답사를 계기로 단동교당 양세정 교무와 인연을 맺으면서 원불교를 접한 그는 현재 유성교당 교도로 신앙수행에 힘쓰고 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