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마음습관으로 삶의 양식 바꾸자

한국사회에서 시민사회 부문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199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형성되는 시민사회 영역은 좀더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데 필요한 자유·보람·자긍심·사회적 위광 등 정부나 시장부문이 담당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고 공유·확산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디지털 지식정보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온-오프라인상에서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구성되어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정치적 성향이 강한 무늬만의 시민사회단체가 대부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내재화되는 사회학습과정을 생략한채 반독재·권위주의체제 투쟁을 거치면서 외형적 틀을 갖추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인들은 삶의 양식으로써 민주주의를 실천해 갈 때이다. 급속한 산업화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물질만능주의 풍토와 시장자본주의의 탐욕, 승자독식의 경쟁구조를 깨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간본성의 근본에 바탕한 '민주적 마음 습관'을 형성하고 공공적 책임의식함양과 사회적 연대활동이 절대 필요하다.

몇 가지 단편적인 정보를 단순한 도식으로 꿰어 맞춰 편을 가르고 극단으로 맞서는 마음의 습관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와 '너희'를 흑백의 구도로 나누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너그러움의 여백에서 민주주의는 꽃을 피울 수 있다. 이를 위해 창조적으로 긴장을 끌어안으려는 마음의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의 습관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곳은 제도화된 거대조직이 아니라 가족·동네·종교공동체 등 소규모의 자발적 결사체에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 일상생활의 장소들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될 수 있는 민주적인 마음의 습관은 민주주의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구성한다. 그것이 건강하게 유지·보수되어야 성숙한 민주주의로 이행해 갈 수 있다.

이러한 자발적 결사체는 모순되는 요구와 주장들을 일단 끌어안고 서로 끈질기게 토론하고 설득하는 공론화 장이 되어야 한다. 의견이 아무리 상반된다 해도 상대방의 인간성마저 부정하지 않아야 그것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이견을 가진 사람들이 정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일원 교법에 바탕한 시민사회단체가 필요한 소이연이다. 막막한 현실에 틈을 내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내는 비전과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적 낭만주의나 순진한 유심론으로 흘러서는 안된다. 서로 다름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적당한 선에서 화해하거나 차이에 대해 무조건 관용하는 것도 정도는 아니다. 따지고 짚어야 할 것은 철저히 다루면서 공동체의 꿈을 위해 가슴 설레면서도 객관적 세계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마음의 힘을 신뢰하면서도 인간 본성의 어두운 심연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삶과 사회의 본질을 예리하게 통찰할 수 있는 속깊은 마음공부로 시민사회의 전개에 대응하여 교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남중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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