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이 지나가고 5월도 가고 있다. 만발한 꽃들의 아름다움도 신록의 푸르름도 실바람의 부드러움도 봄밤의 황홀함도 기쁨이 아닌 슬픔으로 전해지는 날들이다.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 해 본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나 생각해 본다. 슬픔은 이겨내야 할 감정, 없어버려야 하는 감정이라 여기고 있지는 않았나 돌이켜 본다.

나에게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마음공부의 시작이듯 나의 감정을 판단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한 요즘이다.

많은 이들이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괴로워하고 있다. 서로에게 어떠한 감정인지 물어보는 것도 어색하고 힘들다. 감정을 자유롭게 내보이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 약속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표출되어야 할 감정은 표출되어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의 모습이다. 슬플 때는 마음 껏 울고 슬퍼해야 한다.

〈대종경〉 수행품 37장에서 대종사는 "나는 그대들에게 희·로·애·락의 감정을 억지로 없애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을 곳과 때에 마땅하게 써서 자유로운 마음 기틀을 걸림없이 운용하되 중도에만 어그러지지 않게 하라"고 했다.

역사 속의 많은 슬픈 사건들을 예술가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 쇤베르크의 '바르샤바의 생존자'가 그랬고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하라'가 그랬다. 음악뿐 아니라 그림으로, 사진으로 그리고 가장 구체적일 수 있는 문학이나 연극으로 표현해 왔다.

그랬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런 예술 작품을 통해 지나간 역사 속의 슬픈 사실들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당대의 사람들의 슬픔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번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해 많은 음악인들이 음악을 헌정했다. 그 음악들을 들으며 사람들은 비로소 마음껏 슬퍼하고, 서로를 위로했다. 먼 훗 날에도 그 음악들은 여전히 남아 희생자들을 잊지 않도록 해 줄 것이다.

문화계에서도 예정되었던 많은 공연들이 취소되거나 주제를 바꾸어 공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음악회 프로그램에 레퀴엠이 들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가톨릭의 음악인 '레퀴엠(Requiem)'은 죽은 자를 위한 미사 음악이다. 그 음악의 특징 상 모차르트, 브람스, 베르디 등 많은 음악가들이 작곡하여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클래식 음악으로도 그 아름다움과 완성도를 인정받고 있다. 곡의 분위기가 엄숙하고 진지하여 음악으로 모두가 추모와 애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매체에서 두 교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의 제목은 '진도체육관의 자원봉사자'였다. 사진 속에는 여성 교무 두명이 유족들의 빨래물을 모으는 모습이 들어 있었다. 한명은 '빨래해 드립니다'라는 글씨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고, 한명은 커다란 비닐 봉지에 빨래를 모으고 있었다. 나는 울컥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현장 근처에 있는 교무들이 교당에서 간절히 기도도 했겠지만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체육관으로 달려가 유족들을 위로하고 도와주고 있던 것 같았다.

함께 마음껏 슬퍼하고 또 나의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연마하여 행동으로 움직이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가들이 음악으로, 교무들은 기도로, 또 자원봉사로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많은 음악인들이

그들의 음악을 헌정했다

비로소 마음껏 슬퍼하고

서로를 위로했다
<강북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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