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덕을 쌓고 살아가는 방도가 있는 곳'

오월의 장미 때문인가도 싶다. 수계농원을 향해 전주과학산업단지로 들어선 길, 계절의 절정을 말하듯 장미 또한 절정이었다. 산 자들의 슬픔이 가슴을 치받는 극한, 하필이면이맘때 피어나 눈 둘 곳을 없게 하는 걸까. 장미는 눈부시게 붉었고 하늘은 여일하게 파랬다.

만인적덕(萬人積德) 만인활계(萬人活計)

취재 전, 수계농원에 관련된 자료와 책을 찾아보았다. 자료준비에서부터 집필까지 8년여의 시간이 소요됐다는 〈수계농원 60년사〉는 '수계농원에서 전무출신을 했고,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마음을 키우고, 정신을 가꾸고, 몸을 다듬었던 우리들의 역사'로 이는 '교단의 산업사이고, 교단의 인재양성의 역사'임을 상기시켰다.

대종사께서 직접 이곳을 답사하고 '장차 이곳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될 것이며, 많은 사람이 덕을 쌓는 땅이 될 것이다'며 크게 기뻐하셨다는 일화 또한 새겼다. 만인적덕(萬人積德) 만인활계(萬人活計)의 땅, 수계농원에 들어서자 안성원 교무가 합장으로 인사를 건넸다.

대종사 당대의 처소에서 스승의 근본정신을 지켜가는 일
곧 스승의 경륜 이어가는 성업


"수계농원은 대종사께서 직접 마련하신 땅입니다. 이후 대종사께서 세 차례정도 이곳을 다녀가셨다고 합니다. 대종사의 유시를 받들어 척박한 야산을 개간하기 시작해 과실나무도 심고, 양계 양돈 등의 축산사업을 전개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경영에 어려움이 많아 교단경제가 어려워지자 농원의 매각처분까지 논의됐으나 정산종사께서 끝까지 농원을 수호했다고 한다. 안 교무는 '대종사께서 점지하고 구입하신 땅, 정산종사께서 극구 매매를 거부하셨던 땅, 대산종사께서 열반 5년 전 부터 지속적으로 행가하셨던 땅, 수계농원의 역사'를 차분하게 들려줬다.

"원기44년 김현관 교도의 투자로 인삼을 재배하면서 활기를 띠었고 원기50년 은산육영재단을 설립, 인재양성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특히 지해원 종사가 오랫동안 농원장을 맡으면서 많은 인재들을 배출했지요." 기록에 의하면 교단 전무출신 가운데 수계농원에서 근무하고, 공부한 사람이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전한다. 당시 전무출신들의 '정예 양성학교'라 할 만큼 수계농원은 철저한 훈련과 정진으로 유명했다. 수계농원 출신 출가교역자만도 80여명 가까이 교역활동에 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수계농원은 원기72년 전주3공단이 조성돼, 부지 일부가 공단으로 편입되면서 재정과 경영이 다시 악화됐다. 그러나 원기78년 수계농원의 위상은 재정립된다. 대산종사가 농원을 순시하고 '대종사께서 친히 마련해주시고, 정산종사께서 수호하셨던 농원을 다시 중흥하라'고 하명했던 것이다.

안 교무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대산종사는 퇴위 후 요양차 수계농원에 내왕하시면서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전농전선(全農全禪), 즉 일과 공부를 둘로 보지 않고 오롯이 하나가 되어 전념하라는 것입니다. 대종사의 영육쌍전법을 원만하게 드러내신 것이지요."

수계농원은 현재 조경수와 논농사, 임대를 포함한 밭농사 까지 141,900㎡로 구성돼 있다. 수계농원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영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안 교무는 자력으로 농원을 운영하며 초기교단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수계농원의 정체성과 활로를 찾는 일에 고심하고 있다.

"수계농원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비효율적인 운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종사의 경륜과 포부가 살아있는 수계농원의 정신적 가치를 지켜내는 일은 곧, 교단의 중심 가치를 이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종사 당대의 처소에서 스승의 근본정신을 지켜가는 일은 곧, 스승의 경륜을 이어가는 일이라고 안 교무는 단언한다.

초기교단의 정신이 책 속에 묻히거나 이념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원불교가 이 시대 종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고, 수계농원이 마중물 역할을 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안 교무는 수계농원을 숲으로 조성할 계획도 전했다. 이를 위한 준비 작업을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다. 또 수계농원이 자리 잡은 전주3공단의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한 공단교화의 물꼬를 다시 틀 생각이다. 대중과 교감하는 가운데 자율적 개척의지로 스승님들의 뜻을 받들고 싶다는 안 교무의 서원이 '현재의 최선'처럼 느껴졌다.

▲ 3년 전, 영산성지 노루목에서 종자를 받아 심은 팽나무가 자라고 있다.
수계농원 한 켠, 3년 전 노루목에서 종자를 받아 심어놓은 팽나무가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나무는 자라 우리 마음에 청정한 바람과 그늘과 위안을 주는 숲이 될 것이다.

대종사 점지하고 구입했던 땅,
정산종사 극구 매매를 거부했던 땅,
대산종사 열반 5년 전 부터
지속적으로 행가했던 땅, 수계농원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자력으로 농원 운영
초기교단사 정신 이어받아
전농전선의 활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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