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사제지간은 소통의 문제

대종사는 정산종사가 자신을 만난 후 한 번도 걱정을 끼친 적도 없고 시켜서 어긴 일이 없고 두 번 시켜 본 일 없다고 말했다. 대종사와 정산종사의 관계는 과히 스승과 제자사이에 으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마음 없이 대종사를 모셨던 정산종사의 심법은 아무나 할 수 없고 누구나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경이롭다.

그 뒤를 이은 대산종사는 대종사와 정산종사를 둘로 보지 않았다. 대종사와 정산종사 그리고 대산종사는 언제나 그대로 하나의 소중한 법연이었다. 부모와 같이 무간한 사이가 된 스승과 제자의 무조건적인 믿음과 따름은 고귀한 사모곡이 되고 영생을 잇는 소중한 서원송이 된다.

요즘 어떤 관계에서든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문제인 것 같다. 모두가 소통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걸 다 인식은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소통하기가 힘든 것이 어쩌면 우리들을 더 공부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끼리의 소통, 동지간의 소통, 교도와 교무와의 소통, 스승과 제자와의 소통. 소통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소통의 부재가 아닐까도 싶다.

만일 나의 생각과 너의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입을 닫고 마음을 닫아 버린다면 그 처럼 끔찍한 슬픔도 없을 것이다.

교당에서 부직자로 살 때 나름 최선을 다해 산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스승께서 "우리는 모두 대종사의 제자들이다. 원기100년 안에 이 회상에 들어온 사람은 모두가 대종사의 일대 제자들이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모시게 되는 교무는 모두 추천교무와 둘이 아닌 교무로 모실려고 했다.

그런데 이런 나의 마음과는 달리 '너는 누구의 제자이기 때문에 그의 지도를 받을 거야'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음에 마음이 많이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지 못하고 누구의 인연으로 어떤 사연으로 고정지어 단정해버린다는 것이 참으로 싫었다.

나의 행동은 물론이요 나의 사고까지도 그 분들의 분별성과 주착심으로 간섭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자유롭지가 않았다. 마음 한가득 불만과 원망심으로 갈등의 축제가 수시로 열리곤 했다.

세월의 흐름 따라 후배들과 살게 되면서 또 교도들과 직접 상대하게 되면서 후배들의 모습에서 또 강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교도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그 순간 나의 어리석었던 지난날의 심신 작용들이 너무나 부끄럽고 죄스럽게 생각됐다.

생각해보면 상대방이 소통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통을 막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더불어 '나의 습관과 업력이 이것이였구나' 하는 작은 깨침도 얻게 된다.

대산종사는 대종사와 정산종사, 삼세 제불제성과 마음을 연하고 기운을 통해 천지인 삼재에 합일 할 수 있기를 늘 기원했다.

나 또한 스승의 기원을 나의 기원으로 삼아 영생토록 심월상조하길 서원한다.

<포천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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