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성지를 생각하면 대산종사를 처음 뵙던 그 해 봄날이 먼저 떠오른다. 대산종사가 영산에 온다는 소식에 동구 밖까지 쓸고 닦고 모두가 들뜬 기분으로 야단들이었다. 산천초목까지도 꽃피고 새들 노래하며 기쁨 넘치는 분위기였다. 흥분된 마음으로 줄을 서서 박수로 환영을 하니 봄바람타고 마치 천상에서 내려오는듯 사뿐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모습은 저 하늘 사람들의 행렬 같았다.

대산종사 양손에 형산 김홍철·성산 성정철 종사의 손을 잡고 시자가 받쳐 주는 우산에 수십 명의 호위보살들이 뒤를 따르는 행렬은 마치 천상의 한 장면이었다.

걷다가 잠시 멈춰 주위를 살피고 번갈아 주타원 윤주현 종사와 영산식구들의 손을 잡아주던 모습은 참으로 다정다감한 모습였다. 원광원에 도착해서 모두의 인사를 받고 법잔치를 열었다. 두루 돌아가면서 그동안 일들을 보고 할 때 마다 "잘했다, 박수치자"하며 추임새를 더하니 금세 화기와 감동이 넘쳤다.

보고가 마쳐지고 형산종사에게 한 말씀을 부탁했다. 형산종사는 큰 체구에 부리부리한 눈을 굴리며 대중을 둘러보더니 양팔을 옆으로 쭉 벌리고 다시 하늘로 올렸다가 목을 감싸는 동작을 하고는 아무 말 없이 대산종사를 쳐다보았다. 순간 어색한 분위기 속에 대산종사는 흰장갑 낀 검지손가락으로 코 밑을 두어 번 문질렀다. 형산종사 "지금 내 심정이 이만한 새끼줄이 있으면 높은 나무에 매달아 죽고 싶은 심정이다"고 설명하자, 대산종사는 박장대소를 했다. 행복하게 큰 웃음 짓던 대산 할아버지의 모습은 지금 다시 떠올려 봐도 행복해진다.

법명을 주면서 일일이 악수를 하고 "여기서 부처들이 막 쏟아질 것이다"라고 염원해 주던 일을 잊을 수 없는 영산의 봄날! 주타원종사는 고을 원님인 백수면장도 쩔쩔매는 호랑이 원장이었는데 대산종사 앞에서는 순한 양이요 소녀처럼 수줍어하고 존경으로 모시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총부간사와 원불교학과 수학, 재무부 근무시절에 인사를 올리면 깊이 바라봐주던 자비로운 모습은 지금도 가슴에 깊이 간직돼 따뜻해진다.

2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원평 구릿골로 인사를 갔다.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들이 일본의 초청을 받아 다녀온 보고를 드리는 중에 '대접을 후하게 받았다'는 대목에서 물었다. "무슨 또랑이라고?", "예. 레스토랑에서요." 대중은 한바탕 웃었다. 눈을 다시 감고 진지하게 들으신다. 많은 보고를 받으면서도 의문이 들면 그냥 흘러 보내지 않고 묻고 배우는 모습은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그 정성된 힘으로 큰 도를 얻으신 것일까?

3학년 때 심장병어린이를 돕겠다고 강해윤, 김무량, 길광호, 그리고 나까지 4명이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전국을 싸이클로 순례하는 중, 완도에 정양중이던 대산종사 곁에서 하루밤을 쉬고 동백나무 숲에서 야단법석 잔치가 열렸다. 목포교당 회장의 보고가 길어지자 "잠깐 기다리라. 저놈들 사진 찍고 얼른 제주도로 가야 한다"며 그 많은 일정 속에서도 전체를 통찰하고 세세한 일까지 다 챙겨주고 배려하는 모습은 꼭 닮고 싶은 스승에 대한 기억이다.

원기83년 9월13일 대산종사 서울 삼성병원에서 헬기편으로 총부로 오니 구조실을 빙 둘러선 대중들이 간절한 합장으로 숨죽인 채 쾌유를 염원했다. 얼마나 깊은 수양을 했기에 끝까지 단전호흡을 놓지 않았다. 편안하게 누워있는 상태에서 가끔 눈을 떠 대중을 차분히 보고 다시 긴 수양에 들기를 4일째, 17일 0시50분 그 많은 기도와 염원 속에 제자들에게 충분한 위안을 주고 열반에 드니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모습이었다. 이제 노래로 대산종사의 은혜를 추모한다.

오~우리 스승님 그리운 대산여래/ 열한살 소동으로 대종사님 만남은/ 진리의 문 활짝 열어 일원되시고/ 삼십삼년 초석 다지신 거룩한 생애/ 일원대도 삼동윤리 하나의 세계로/ 평화는 오리 님이 주신 사랑의 서약/ 영산 변산 익산각지 야단법석잔치/ 비닐하우스 자비훈풍 대산종사님/ 인재양성 종교연합 마음훈련하자/ 정신개벽 대정진 대적공하자/ 일원대도 삼동윤리 하나의 세계로/ 평화는 오리 님이 주신 사랑의 서약.

<부산원음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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