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생을 가더라도 이 회상에서 벗어나지 말아야지"
60년 동안 변함없이 써온 법문사경
이 법 만난 행복, 일원가족으로 보은

학타원 조현숙(學陀圓 曺賢淑)교도, 그의 나이 아흔 다섯이다. 그는 지금도 하루도 어김없이 노트를 펼쳐 팔꿈치 보호대를 차고 돋보기로 경전을 들여다보며 법문을 사경한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일심이 묻어나는 그의 사경노트는 60여 년 동안 그렇게 차곡히 쌓였다.

짧게는 3~4시간, 또는 하루 온 종일 법문을 사경하는 그에게서 은은하고 깊은 묵향이 전해졌다. 아흔을 훌쩍 넘어선 그의 얼굴에서도, 평온함이 묵향처럼 더없이 깊고 깊어 보였다.

그의 친정은 장수교당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는 그 곳, 장수에서 신앙의 싹을 틔웠다. "그날은 정산종사님이 오신다는 날이야. 장수교당 대문으로 큰 구렁이가 훌쩍 넘어가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그 놈도 제도 받으려고 급했구나. 이 생각이 들어."

그는 당시 정양을 위해 교당에 머무르던 정산종사를 가까이서 뵐 수 있었다. '정산종사가 계신 뒤로는 장수교당이 깨끗해졌다'는 기억으로 그는 성현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그의 앞에 놓인 작은 탁자에는 팔꿈치 보호대와 돋보기, 사경노트, 경전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자연스레 법문사경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이 먹은 사람이 공부한다고 하면 젊은이들도 분발을 좀 하겠지. 그런 게 좋은 거지. 젊어서부터 습관이 되면 나이 들어서도 충분히 하지. 지금까지 법문 쓰는 거 힘든 줄 몰라."

원기39년 입교 때부터 60년 동안 변함없이 써온 법문사경이 그에게는 '특별할 것도', '힘이 드는 것도' 아닌 그저 하루하루를 교도답게 살아가는 '길'인 것이다.

"이 법 만난 게 얼마나 감사한지. 참 내가 좋은 인연을 그래도 어느 땐가 지어놨구나. 이 생각을 해. 원불교가 주교가 된다고 했는데, 이 성현님들 회상에서 벗어나지 말아야지. 이맘이야." 그는 이 법 만난 게 행복하다, 참 행복하다며 행복을 반복했다. 행복한 기운은 금새 방안 가득 퍼졌다.

"큰 딸이 자연적으로 따라주니 신통하고 예쁘지. 사위 까지 따라주고. 둘째 딸도 뉴욕교당에 잘 다니고 있고. 진손녀 까지 교당에 다녀와서 전화를 해. 온 가족이 일원가족이 됐어." 그래서 대종사 은혜에 더욱 감사하다는 그다.

평택교당 민명철(사위)·강남원(큰 딸) 교도부부는 당시 평택교당 신축을 위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민 교도는 10여년 전에 세운 서원으로 교당 설계 초안을 직접 발표하고 특별희사를 했다. 현장감독까지 하는 민 교도의 신심과 정성이 불씨가 돼 전 교도들의 일심합력으로 교당의 숙원사업을 이룬 것이다.

"사위가 교당을 짓는다고 해서 내가 큰 절을 했어.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지. 내가 좋은 법 가지고 자식들 일원가족 만들었으니 대종사님께 조금이라도 보은하고 가는구나 싶어." 행복하고 행복한 이유가 그에게는 많았다.

그가 손수 만든 팔꿈치 보호대, 손때가 배어있는 낡은 보호대를 그는 요긴하게 사용한다. "몰라. 법문사경을 하는 그 기분을 말할 수가 없어. 일제 강점기 탄압이 얼마나 심했는데, 대종사님이 이 회상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행하셨을지 생각하게 돼. 이 법으로 회상 만들어 나가면 우리나라가 세계일류가 되겠구나 의심이 없어."

그는 매일 새벽 4시면 기상한다. 기상 후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따로 집안에 마련된 법당에서 명상과 독경,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아침부터 점심식사 전까지 3~4시간을 경전을 읽고, 사경하고, 해석한다. 그의 말대로 '요즘은 많이 못해. 몸이 잘 안들어서'가 점심 전까지 사경을 하는 이유다.

"어려서 무서워하면 어머니가 청정주 외우면 된다고 말씀해 주세요. 바로 청정주를 외웠어요. 그러면 무서울 게 없어요" 어려서부터 모친의 말씀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는 절대 '신뢰'였음을 전하는 막내 딸, 강성심 교도. 막내 딸은 "어머니 덕분에 이 좋은 불법을 만날 수 있게 됐다. 태어나게 해주신 만큼 그만큼 더 가치 있고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부모은에 감사했다.

'어떻게 하면 원불교에 보탬이 될까'를 항상 염두하며 '모습' 자체로 언어보다 더한 감동을 자녀들에게 전해주는 그에게 바람이 무엇일까.

"우리 애들이 사경노트를 한번이라도 더 읽겠지. 이대로 실천하게 될거고. 그렇게 대대로 공부하겠지. 그러면 대대로 사람답게 사는 거잖아."

"제각각 인연을 따라 가니, 다른 종교가 좋다 나쁘다 생각은 안 해. 다만 이 나라에 원불교가 주교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몇 생을 가더라도 이 회상에서 벗어나지 말아야지. 바람은 그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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