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많은 어르신들, 인문학으로 사는 재미 깊어지다

시대적 아픔을 잊지 않고 또 다시 희망의 씨앗을 키워내는 일을 우리는 멈출 수 없다. 희망을 담고, 꿈을 꾸며, 정직하게 소신껏 자기 삶을 일궈가는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담아내며 우리가 살아갈 세상의 희망 씨앗을 다시 틔워본다.

▲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에서 주관하는 강좌를 수강하는 어르신들. 그들은 인생을 되돌아 볼 줄 아는 깊은 지혜에 대한 배움을 원했다.
인문학 강의시간, 어르신들은 강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한다. 강사의 유머에 함께 웃고, 질문에는 부끄러워하며 대답을 하는 어르신들. 60세부터 70세 후반까지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배움에 대한 열정을 복지관 강의실에서 불태우고 있었다.

신해범(78) 어르신은 "우리는 젊었을 때 먹고 사는 일이 제일 중요했다. 어렵고 힘든 시절 어떻게든 벌어먹고 살려고 노력했는데, 세상이 좋아지니 이렇게 좋은 공부들이 있는 줄 나이 들어서 알게 됐다"며 "뒤늦게라도 대학에서나 받는 강의를 이렇게 받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강의를 전부 알아듣지 못할지언정 지금이라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는 것이다.

이번 기획은 전주의 양지노인복지관을 찾아가 황혼이지만 늦깍이 배움에 열정을 쏟고 있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인문학을 통해 배움의 한을 풀다

마음인문학 강좌는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에서 주관하고 전주시내 복지관에서 진행 중이다. 〈논어〉, 〈동의보감〉, 〈심리학〉 등 매 강의마다 전공과목과 강의교수가 달라진다. 담당하는 강의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어르신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고 하지만 모두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이상봉(69) 어르신은 "시간은 많은데 복지관 시간표에 고급스러운 과목이 없어서 아쉬웠었다.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강의를 원하는 사람도 많다"며 "개인적으로 불교학을 조금 했었다. 이것을 보고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부분을 좀 더 알고 싶어서 강의에 임하게 됐다"고 수강 동기를 설명했다. 단순한 배움에서 벗어나 마음과 철학이라는 부분에 관심을 갖고 복지관에 다니시는 어르신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왕국민(76) 어르신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우리 젊을 때는 그냥 일반사회를 단순하게 뛰어다니기만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사색하고 공부하면서 신중하게 행동했더라면 인생이 바뀌었을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며 "동양사상을 배우면서 깨닫게 되는게 참 많다. 또 생소하기도 하지만 서양철학을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했다.

한 어르신은 "인문학이라고 해서 호기심에 참석했다. 인문학과 철학사상, 조금씩 부분 부분 맛만 보는 것이라 많이 아쉽다"며 "몇 시간씩 깊게 들어갈 수 있는 강의가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어르신들은 젊었을 때 조금이라도 책을 더 보고 지혜를 얻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 이제 세상을 다 겪고 보니 새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시급했던 것들과 중요했던 것들을 이제야 알 듯 하다는 감상이다.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은 자신이 만드는 한계일 뿐
평생공부, 누구라도 늦었다는 법은 없는 것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은 만큼 열정도 높다

어르신들 배움의 열정은 한 곳에 고정되지 않는다. 자녀들을 키우느라 젊었을 때 전혀 신경쓰지 못해서 잃어버렸던 건강. 그 건강에 대한 소중함을 이제야 깨닫는다며 요가를 열심히 배우는 어르신도 있다.

강예자(68) 어르신은 "자식들이 다 크고 자기 할 일 하고 나니까 이제야 내 몸 돌볼 여력이 생겼다. 늙었지만 그래도 이런 좋은 시설이 있어 홍복을 누리는가 싶다"며 "평소 등산도 하고 이렇게 요가 강의 있는 날은 빠지지 않고 꼭 참석한다"고 말했다. 요가 동작이 쉽지 않고 잘 되지도 않지만 그래도 건강의 소중함을 깨우친 만큼 열심히 임하려는 열정은 누구 못지 않았다.

또 건강을 위해 부부가 스포츠댄스를 배우는 경우도 있다. 이현재(77) 부부는 늘 복지관에 함께 다닌다. 그는 "건강증진을 위해서 배운다. 많이 움직이는 운동이어서 건강도 챙기고, 부부간에도 대화도 많이 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점 같다. 스포츠댄스를 배우는 부부가 우리 말고도 여러쌍 된다"며 "그 동안은 댄스라고 해서 사람들 인식이 좋지 않았다. 해보면 그런 것도 아니고 누구라도 한번 해보라고 권하고 싶은 운동이다. 스포츠댄스를 배우고 나면서부터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스포츠댄스가 건강증진은 물론 부부간 화합도 큰 도움을 준다는 말이다.

최문칠(78) 어르신도 "부부로써 사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스포츠댄스에 다니고 부터는 부부가 함께 다니는 것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행복임을 알았다"며 "그동안 우리가 젊은 시절 몸 관리도 잘 못하고 그랬는데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면 많이 안타깝다. 젊은 사람들 보면 건강이 중요하다고 깨닫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젊어서 잘 배우지 못했던 것은 비단 지식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르신들은 자녀를 키우고, 또 직장 때문에 시간이 없어 가꾸지 못했던 건강에 대한 갈증과 후회도 매우 컸던 것이다.
▲ 어르신들이 강의내용을 기재하며 경청하고 있다.
배움에 대한 어르신들 열정에 대한 교훈

얼마 전 78세 나이로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에 도전하는 정금우 할머니가 기사에 나와 화제가 됐다. 그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후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았다. 또한 아들또래 교수들에게도 항상 예의바른 자세로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평생 공부하고 배운다 했던가?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배운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에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존경받고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일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철수 의원은 의사, 연구소장, 컴퓨터 백신 전문가, 사업가, 교수, 정치가 등 굉장히 많은 프로필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을 이렇게 변화시켰던 일화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 적이 있다. 어느 70대 할아버지가 60대 할아버지에게 "내가 당신 나이라면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인생에 정말 늦은 것은 없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더욱이 그는 50세가 다 되어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아버지를 직접 보고서 나이와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은 자신이 만드는 한계라는 사실을 알고 이처럼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어르신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도전의 희망풍경이 한 여름 날씨만큼 뜨겁다. 옛말에 '배움에는 때가 있다'고 했으나, 이제는 그 말도 옛말. 어르신들의 열정을 보노라면 안철수 의원이 이야기 한 것처럼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며 심리적인 것'에 불과하리라.

누구라도 늦었다는 법은 없다.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것이 제일 빠른 것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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