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원 원무 / 이천교당
내가 원무 사령을 받은 것은 지금부터 10여 년 전 원기89년도로, 당시에는 원무가 나를 포함해 10여명 내외로 기억된다. 군종 분야에서는 유일하게 현역 군인으로서 사령을 받아 매우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해 6월 당시 좌산종법사는 군종에 뜻을 갖고 있는 6명의 현역간부 교도가 조실에 부름을 받는다. 좌산상사는 우리를 불러놓고 군종교화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함축해 하명했다.

좌산상사는 "교도 몇 명 늘려 보자고 군종활동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니다"며 3가지 이유를 들어 우리들에게 서원을 불어 넣었다. "첫째 희미해진 도덕에 등불을 살려 내야 된다. 부모가 자식을 해하고 자식이 부모를 해할 정도로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 이런 위기에 도덕의 등불을 살려 내기 위해서는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하고 있는 우리 교단이 땅에 떨어진 도덕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종교다.

둘째 우리 민족이 문화적 우수성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외국 문물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민족성과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시기에 정신개벽을 주창하고 있는 원불교가 민족의 역사와 가치를 살릴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우리 민족종교가 나서야 할 시기다. 또한 인격이 완성되는 시기인 젊은 군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신무장의 교리를 갖추고 있다.

셋째 우리 교단은 현재 다양한 국외 현장에서 해외교화를 하고 있다. 그런데 자국에서 조차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국내외 교화에 힘을 받을 수 없다. 국방부는 정부기관이다. 반드시 군종승인을 통해 인정받아야 된다. 그래야 교화의 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다."

나는 말씀에 크게 공감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16년 동안 군 생활을 해오면서 정상적인 종교 활동을 하지 못했던 서러움이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 말씀에 의지하게 됐다. 당시 우리 교단은 대중사회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였기 때문이다.

입대후 종교활동을 위해 인원파악을 할 때면 당연히 기독교, 불교, 천주교 밖에 없었지만 난 항상 '원불교'라고 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한 훈육요원은 '불교의 종파 아니냐'고 하고, 다른 훈육요원은 마치 비정상적인 종교를 신앙하는 듯한 불편한 시선을 주곤 했다.

그 당시 어린 마음에 많은 상처와 충격을 이기기 힘들 때도 있었던 것 같다. 모친께서 영산에서 살면서 영산교당에 내 손을 붙잡고 다니며 신앙생활을 했고, 장녀(원광모자원 조인수 교무)를 출가 시킬 정도의 원불교 가정에서 자란 나이기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았다.

나의 원무 사령과 활동이 10년이 흘렀다. 10년 동안 군종분야 원무로서 활동을 해오면서 글로써 표현하기 힘든 이런저런, 울고 웃던 일들도 많았던 것 같고 나의 신앙심도 더욱 두터워 진 것 같다.

부족한 나에게 보은할 기회를 주신 좌산상사께 지금도 감사하며, 교단의 발전에 어떻게 하면 보은 할 것인지 늘 연마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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