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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 교무의 마음칼럼 6. 각자의 분별성과 주착심을 깨달음의 도구로 삼자
김현욱 교무의 마음칼럼 6. 각자의 분별성과 주착심을 깨달음의 도구로 삼자
  • 김현욱 교무
  • 승인 2014.06.13
  • 호수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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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상담실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을 만난다. 마음의 병, 부부, 가정, 자녀양육, 직장,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각자의 어려움에 대한 자기만의 분별성과 주착심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자신은 자신감이 없다. 인생에서 행복한 적이 없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 남편은 내 마음을 모른다. 너무나 무기력해서 스스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 직장에서 자기만 왕따를 당한다. 그 이유를 모르겠다 등등 다양한 주제들이다.

오랜 상담 경험에서, 내담자에게 그만의 주관적인 세계인, 분별성과 주착심을 알려주거나, 지적해서 없애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개 내담자들은 말해줘도 믿지 않거나, 자기도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일축해 버린다. 사실 분별성과 주착심은 남이 알려주거나, 생각으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때에 상담자는 오히려 내담자가 자신의 분별성과 주착심을 더 이야기하고, 그 생각과 감정을 상담에서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도록 격려한다. 비밀을 보장하고, 심리적 안전감을 준다. 흔히 정서적 공감, 무조건적 긍정, 진실된 태도라고 불리우는 상담자의 태도이다. 그리고 내담자가 안심하고 자신만의 분별성과 주착심을 심리적인 굴 밖으로 완전히 꺼내도록 기다린다.

그때 비로소 내담자는 스스로의 마음거울을 통해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자신만의 분별성과 주착심을 깊이 만나다보면 내담자는 자신만의 분별성과 주착심을 마치 오뚜기처럼 더 순발력 있게 알아차리고, 속지 않고, 잘 사용할 수 있는 마음공부의 힘을 갖춰나가게 된다. 즉 자신 스스로 주체가 될 가능성을 이미 갖고 있고, 상담과정을 통해 힘을 갖추게 될 때, 자신만의 분별성과 주착심은 없어지지 않더라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거나, 오히려 공부꺼리로 화하게 된다.

〈원불교 전서〉 일원상 장의 일원상의 진리, 신앙, 수행, 서원문, 법어, 게송을 너무 어렵게 보지 말자. 실제로 육근을 통해 응용해본 경험에서부터 출발해서 쉽게 배우고, 가르치고, 사용하도록 하자. 그에 따라 각자의 공부정도가 밝아지고 깊어질 것이다. 특별히 깊은 공부, 넓은 공부, 오묘한 해석 만을 찾다가는 날샐 수도 있다.

마음공부는 곧 성리공부로 볼 수 있다. 성리는 우주 만유의 본래 이치를 해결하여 알자는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자성 원리를 해결하여 알자 함이기 때문이다. 자성 원리란 말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내 마음이고, 내가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사용하는 그것이기에 각자의 공부 정도에서 알고, 수호하고, 사용하고 있는 그것이다.

육일대재에 참석했던 청년교도와 우리 기관에 근무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잠자고 싶은 일요일 오전에 90분간 앉아 있으면서, 고축문(告祝文)은 한자 말투 표현이 너무 많았고, 몇 좌위(座位)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서 너무 길고 지루했다는 것이다. 나는 순간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기본적인 내용들이라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용어가 함께한 누군가에게는 못알아 듣는 외계어였던 것이다. 우리는 원불교라는 틀에 우리만의 교법과 용어에 너무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과천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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