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법과 하나돼 생활하는 것

법강항마위는 육근을 응용하여 법마상전을 하되 법이 백전백승하며, 우리 경전의 뜻을 일일이 해석하고 대소유무의 이치에 걸림이 없으며, 생로병사에 해탈을 얻은 사람이다.

육근을 응용하여 법마상전을 하되 법이 백전백승한다는 것을 단순화하여 공부의 표준을 잡는다면 재색명리에 확실히 토가 떨어져서 어떠한 경우라도 불의의 재색명리를 취하지 않는 정도로 볼 수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경전의 뜻을 일일이 해석하고 대소유무의 이치에 걸림이 없다'는 것은 경전에 담겨 있는 언어와 문자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물론이며, 경전의 뜻을 일상생활을 통하여 실행하여 생활이 법도에 맞는다는 것이다. 법강항마위는 교법과 자신이 하나되어 생활하는 것이다. 최소한 아침에는 심고와 좌선으로 수양에 정진하고 낮에는 감사 보은하는 생활을 하며 저녁에는 참회반성으로 법도 있는 일상생활을 하는 것은 물론 육근동작이 모두 법도에 맞는다.

대종경 변의품 34장에 보면 "견성을 못 한 사람으로서 정식 법강항마위에 승급할 수 있나이까"라는 김기천 선진의 질문에 소태산 대종사께서 "승급할 수 없나니라"라고 단정적으로 답했다.

법이 백전백승하고 경전의 뜻을 일일이 해석하며 생활이 법도에 맞는 것은 견성을 하지 않고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 경전의 뜻을 일일이 해석하고 대소유무의 이치에 걸림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자성원리와 우주만유의 본래 이치를 터득하고 대소유무와 시비이해에 걸리고 막힘이 없다는 뜻이다. 즉 성리에 토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견성은 반드시 거쳐야만 경전의 뜻을 일일이 해석하여 교법정신에 부합되는 생활로 법도에 맞을 수 있으며, 법이 백전백승할 수 있고, 대소유무의 이치에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대(大)라 함은 우주 만유의 본체를 이름이요, 소(小)라 함은 만상이 형형색색으로 구별되어 있음을 이름이요, 유무라 함은 천지의 춘·하·추·동 사시 순환과, 풍·운·우·로·상·설(風雲雨露霜雪)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흥·망·성·쇠의 변태를 이름이다. 대소유무를 간단히 다시 정리하면, 대는 전체요 바탕이라면 소는 부분이요 나타남이며 유무는 변화 상태인데, 이 변화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 그리고 부분과 부분의 관계로 일어난다. 따라서 나의 마음이나 우주 자연이나 그 원리를 정리하면 대소유무이며,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시비이해로 나타나난다. 대소유무의 원리에 근거하여 시비이해를 판단하고 생활하는 사람은 생활이 법도에 맞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리공부를 통하여 견성을 하지 않고는 법강항마위에 승급할 수 없다고 대종사께서 단정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대종경 교의품 5장에서는 일원상 수행에 대하여 "일원의 원리를 깨닫는 것은 견성(見性)이요, 일원의 체성을 지키는 것은 양성(養性)이요, 일원과 같이 원만한 실행을 하는 것은 솔성(率性)인 바, 우리 공부의 요도인 정신 수양·사리 연구 ·작업 취사도 이것이요, 옛날 부처님의 말씀하신 계·정·혜(戒定慧) 삼학도 이것이라" 했다.

대소유무의 이치에 걸림이 없이 성리에 토가 떨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일원의 원리를 깨달아서 모든 사고와 판단의 기준이 일원의 원리 즉 성리에 있고, 그 판단의 기준에 따라서 취사하기 때문에 생활이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일원상 수행을 잘하여 견성 양성 솔성에 있어서 법도에 맞는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실행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중앙중도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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