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문국 교도 / 미주선학대학원 명예총장
대산종사 열반한 다음 해, 1999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당시 좌산종법사의 부름을 받아 뵀더니 대산종사의 유지를 받들어 미국에 교역자양성을 위한 대학원을 설립하려하니 그 사업의 책임을 맡으라 했다. 나는 그때 고희를 넘기고 있던 터라 역부족하다고 사양하려다 대산종사께서 그 유지를 남길 때 내 이름까지 거명했다고 듣고 그 분부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 문득 16년전 신도안의 삼동원에서 뵀던 대산종사를 회상했다. 내가 서울대학교 부총장으로 임명 받은 지 얼마되지 않을 때 주임교무인 박은국 교무와 함께 삼동원에 대산종사를 뵈러 갔다.

돌담가에 서 계시던 대산종사께 인사를 올리고 부총장 됐다는 보고를 드리니까 쌍수를 들어 기뻐하며 "이제 총장 되어"하시면서 엄지손을 높이 올렸다.

그런데 나는 어떤 사유이던 서울대학교 총장 자리에는 오르지 못하고 말았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그분께서는 서울대가 아닌 장차 미국에 설립할 교립학교 총장을 미리 말씀하셨던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교단의 해외 특히 미국교화에 관심을 가져왔고 교단이 현지 언어와 문화에 대한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교무들을 해외에 파견하는 무모를 안타깝게 여기고 그 개선을 요로에 건의하기도 했다. 또 그 얼마전에는 미국의 한 대학에 원불교학 강좌(작은 학과)를 설립하게 하고 우리 교역자를 그곳에서 양성하는 방도를 모색하다가 교단의 호응을 받지 못해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 대산종사 딸(복혜, 복인)들이 필라델피아에 독립된 대학을 설립하려는 구상을 듣고 협력 권유도 받았었지만 교단의 인적 물적 자원이 너무 미흡하다고 생각되어 그 계획에 찬성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교단이 대산종사의 유지사업으로써 학교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니 아무리 어려운 일일지라도 이를 회피할 수 없다고 생각돼 그 사업의 일익을 담당하기로 결심했다.

미주선학대학원의 설립과정은 정말 험난했고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나 자신이 미국에서 대학을 설립 운영할 식견과 경험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교단의 지원도 현지사정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미흡했다. 그래도 현지에서 오랫동안 기반을 닦아온 형제 자매들은 진력과 그분들이 맺은 지역의 학계 및 사회적 유력인사들의 배경과 지원, 그리고 관련 교무들을 포함한 교직원들의 희생적 노력이 있었기에 그 난관들을 하나씩 헤쳐 나갈 수 있었고 오늘의 결실을 성취했다. 재정적으로는 고 신타원 김혜성종사(교사 구입)를 비롯한 원남교당의 법동지들(기숙사 구입), 그리고 국내외 많은 재가 출가들의 후원 덕분에 작은 규모로나마 학교 유지기금(13억원 상당으로 대산종사기념기금으로 명명)과 장학기금도 설립하면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애초 원불교학과와 선응용학과의 두 전공으로 출범했다가 침구학과를 증설하여 분야 면에서 영육을 쌍전한 교육기관으로 확장하고 현지인들과의 소통을 증진시키면서 재정적 자립도를 높일 수 있었다. 미국의 일류대학의 수준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인증제도'의 절차들을 차례로 단시일 내에 통과한 후 '인증된 석사학위'를 배출할 수 있게도 됐다. 원불교학과 졸업생 교무들은 현지적응과 영어권교화를 위한 충분한 기초를 쌓아 미국의 여러 교당에서 현지인 교화를 제대로 개척해나갈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력이나마 이 설립과정에서 책임자로 공헌했음을 영광으로 여기면서 대산종사와 역대 종법사의 은덕과 끊임없는 지도편달로 도와준 이사진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협력해 준 교도들과 교직원들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다.

대산종사께서 일찍이 교헌에 삽입해 놓은 해외(미주)총부가 하루 속히 정립되어 그 기능을 발휘하고 그 리더십 아래 선학대학원과 미국 내 교당들이 유기적으로 협력 운영됨으로써 활발한 현지인 교화를 펼쳐 우리가 꿈꾸는 주세교단으로 발돋움하기를 간절히 희구하고 싶다.

우리 교단과 미주선학대학원이 대산종사를 포함한 스승들의 높은 경륜을 받들어 길이 발전하리라 믿고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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