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 제도할 자격을 갖춘 정사

법강항마위는 법이 백전백승하여 생활이 법도에 맞고, 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해석을 할 수 있고, 대소유무의 이치에 걸림이 없는 성리의 표준이 확립되고,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이치를 깨달아서 생로병사를 해탈을 얻은 심법을 갖춘 사람이다.

생로병사에 해탈은 얻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소유무의 이치와 불생불멸 인과보응의 이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통하여 나를 포함한 인간의 생로병사의 원리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었다 할 수 있다.

진리적인 안목에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의 변화와 대자연의 춘하추동 사시의 변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령들의 생로병사의 변화가 모두 일원상 진리의 작용으로써 하나의 원리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나의 생로병사는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영원한 시간을 통하여 일어나는 변화의 과정임을 알 수 있다. 깨달은 부처나 대종사와 같은 성자는 이 생사로 변화하는 모습을 거래라 했다. 생로병사는 변화이며 오고 가는 거래의 되풀이라고 했다.

따라서 생로병사에 해탈을 얻은 사람은 나의 생로병사가 변화요, 거래임을 확실히 믿는다. 이러한 확신에 근거하여 긴 안목으로 보면 영겁을 통하여 나의 몸과 마음은 생로병사의 변화가 끊임없이 계속된다. 그 시간을 짧은 순간으로 끊어 보면 찰나의 순간에도 나의 몸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그 찰나의 순간에도 나의 마음은 생멸과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몸과 마음이 어우러져서 구성되어 있고 이 몸은 마음의 지배하에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생멸 변화를 자유자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면 생로병사에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도 무수한 생멸 변화를 거듭하는 그 마음을 안정시키고, 일심을 집중하며 그 고요하고 맑은 본래 마음을 회복하여 샘솟는 지혜의 빛으로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법도에 맞게 거느리고 자유자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연히 생로병사에도 해탈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생로병사에 해탈을 얻는다는 것은 일생을 마치고 죽음의 순간에 앉은 자세로 몸과 마음을 분리하여 영혼을 이 몸에서 날려버린다거나 하는 좌탈입망의 신비한 능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짧게는 마음의 거래를 자유하고 길게는 생사의 굴레로부터 해탈하는 것이다.

이 생멸변화의 원리를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중생은 지나간 과거의 마음에 얽매일 뿐만 아니라,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에 전도몽상으로 꿈속을 헤매고 있다. 그러나 이 원리를 깨달아 아는 법강항마위의 법력을 갖춘 사람은 그 생멸변화에 집착하여 현혹되지 않고 그일 그일에 일심으로 임할 뿐, 불안과 공포로 전도몽상하지 않고 항상 넉넉하고 한가한 마음의 상태를 지속할 수 있는데 이것이 생로병사에 해탈을 얻은 모습이다. 일생을 마치고 다음 생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이러한 마음으로 여여하다.

법강항마위는 법계를 정사(正師)라 한다. 정사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제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스승의 자격이 있다. 자신제도는 물론 정법의 스승으로서 다른 사람을 제도할 수 있는 법력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법과 마의 싸움에서 법이 백전백승하여 생활이 법도에 맞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법의 표준이 될 뿐만 아니라 성리에 걸리고 막힘이 없으며 생로병사에 해탈을 얻어 스스로 악도에 떨어질 염려가 없으니 자신 제도는 마쳤고 다른 사람을 제도할 자격을 갖춘 정사라 한다.


<중앙중도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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