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눈물 닦아주는 윤리적 소비, 공정무역

▲ 국내 최초 공정무역 멀티샵인 그루는 안국동 공정무역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스타벅스보다 고릴라커피잔을 든 남자·여자와 데이트하겠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미국 전역을 휩쓸었다. 이는 농장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다국적기업의 커피보다는 노동자들에게 제 몫이 돌아가게 하는 공정무역(Fair trade) 커피를 이용하겠다는 '윤리적 소비'의 표현이다.

당시 스타벅스는 그들의 노동력 착취를 세계의 종교, 시민단체, 학자들에 의해 비난받아오고 있었고, '고릴라커피'와 같은 공정무역커피는 뉴욕, 런던 등 대도시의 한복판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었다.

합리적 소비를 넘어 착한 소비로

싼 값으로 좋은 물건을 사는 것이 '자본주의적 합리성'이며 '합리적 소비자'의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윤리적 소비의 시대다. 경제적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른바 '먹고 사는 차원의 소비'를 넘어 다 같이 잘 사는 상생의 소비, 착한 구매의 수준이 도래한지 오래다. 조금만 더 알고 소비하는 것으로 먼 곳의 가난한 노동자의 땀과 눈물을 닦아줄 수 있으며, 그들이 가난의 굴레를 끊고 교육과 자기계발을 할 수 있다. 커피 한잔에 섞인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눈물과 땀, 그 악연을 끊자는 것이 바로 공정무역의 정신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정무역이 인식된 건 2000년대 초반이다. 아름다운 재단이 '아름다운 커피'를 내놓고 가수 김C가 '착한 초콜릿'의 얼굴로 나서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시작됐다. 커피전문점의 확산과 함께 '밥보다 비싼 커피'를 흔하게 마시게 되면서 이 커피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등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을 커피나 카카오의 주산지인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농장의 현실을 보고 들으며 잘 포장된 커피 한잔의 진실을 마주했다. 하루 16시간 이상을 일하지만 1달러도 안되는 임금으로 온 식구를 먹여 살리는 커피 노동자의 현실, 동생들의 끼니를 위해 종일 커피콩을 따는 어린 노동자의 눈물이 우리 사회를 각성시킨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커피 소비가 늘어나면 농장 노동자들의 삶의 질도 나아져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커피가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가난하고 참혹해져만 가고 있다. 이는 다국적기업이나 대규모 무역 회사와 계약하기 위해 현지 농장주들이 노동자들을 헐값에 착취하기 때문이다. 농장주가 계약을 위해 커피 원두 가격을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하고, 계약을 따내면 이 가격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인다. 게다가 중간 유통업체의 높은 이윤을 막을 제재장치가 없다. 이 때문에 커피 소비가 늘어 농장들의 경쟁이 늘어날수록 다국적기업과 유통업체의 배만 불릴 뿐 노동자들은 더 많이 일하면서도 더 적게 받는 것이다.

무역, 식민지 역사의 체감온도가 더 높은 서구사회는 이미 1950년대 이러한 불공정한 구조에 주목했다. 미국과 유럽은 이때부터 '공정무역'의 개념을 만들고 '공정무역캠페인'을 벌여왔다. 공정무역운동은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불리한 처지에 놓여있는 저개발국가의 생산자들에게 시장에서 정당한 몫을 얻고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의미다. 또한 생산자의 성별이나 연령, 인종에 상관없이 정당하게 평가된 노동의 대가를 지불받는 성평등, 연령평등의 원칙을 지키고 역량을 강화해 최종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는 홍대 카페 수카라.
100억원대 시장 규모로 성장

커피와 초콜릿의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 공정무역은 다양한 노력으로 매년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공정무역 기구 및 NGO들은 농장을 매입해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고 교육 및 자립훈련을 시키며 전 세계 공정무역가게에 납품한다.

2011년 국제공정무역인증기구(FLO) 기준으로 한화 7조 1000억원이 거래됐다. 공정무역에 참여하는 생산자들은 66개국 120만명이 넘고, 그들의 가족까지 합치면 전 세계 약 750만명이 실질적으로 공정무역의 혜택을 보고 있다.

국내 공정무역 시장 규모도 빠르게 늘고 있다. 커피와 초콜릿을 비롯해 수백가지 상품이 공정무역샵 그루, 울림, 아름다운 가게, 두레/아이쿱 생협 등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서울 홍대와 안국동을 시작으로 부산 해운대, 전주한옥마을 등 공정무역 커피와 제품들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매년 5월10일에는 '세계 공정무역의 날' 한국 행사로 공정무역을 홍보하고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7개 기관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공정무역 매출 규모는 2009년 54억원, 2010년 76억원, 2011년 100억원을 넘어 2012년 130억원으로 추산됐다.

국내 커피 소비량은 작년 기준 1인당 484잔에 이른다. 매일 한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 속에는 무거운 커피콩을 지고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하루 16시간 이상을 일하는 선량한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들어있다. 우리는 그저 '공정무역'이라는 네 글자를 확인해 소비하는 것만으로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 수준의 소비자인가, 지금 우리의 손에 든 커피는 얼마나 공정한가.

서울 종로구 안국동은 '공정무역거리'라고도 불린다. 대한민국의 공정무역 역사를 일궈온 아름다운가게 안국점과 사)한국공정무역연합과 주)페어트레이드코리아가 북촌까지 촘촘히 펼쳐져있으며, 공정무역제품을 파는 가게와 카페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그루'는 국내 최초의 공정무역멀티샵으로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던 2008년 안국동에 문을 열었다. 패션회사인 그루(http://www.fairtradegru.com)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네팔, 베트남 4개 국가와의 무역을 통해 현지의 노동자들의 수공예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루의 패션제품은 회사 소속의 디자이너들과 현지 노동자들의 합작품이다. 샘플원단과 디자인 초안, 품평 결과 등이 수차례 오가야 하나의 상품이 완성된다. 특히 면과 황마 등 원단을 다루는 데 있어 생산자들의 건강을 고려해 유독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패션 제품은 물론 식품, 생활용품과 액세서리도 판매하고 있는 그루의 스테디셀러는 면머플러와 스카프, 가방 등이다. 좋은 의미의 건강한 제품인 덕에 어버이날이나 스승의날 등 중요한 선물용으로 많이 판매된다. 서울 광장동과 충남 보령, 대구에 샵이 있으며, 서울시청 신청자 지구마을에서도 제품을 만날 수 있고, 인터넷 판매 비중이 더 큰 만큼 홈페이지에서도 다양한 제품을 만날 수 있다.
▲ 윤리적 소비의 공정무역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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