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인연부터 제도하라'

원무 사령을 받고 나의 활동이 시작됐다. 무대는 현역 군인들이 살아 숨 쉬는 군부대였고 대상은 당연 현역 군인이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우리 교단이 국방부 군종승인 대상 종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좌산종법사와의 약속을 생각하며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꼭 이뤄야 한다는 간절한 생각에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다.

좌산상사는 "군종교화에 우리 교단의 3대사업 중 하나인 교화의 사활이 걸려 있다"고 당부했다. 나는 이점에 깊은 공감을 하고 있었다.

원무 사령을 받고 대략적인 교화 활동 계획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가까운 인연부터 제도 하라'는 가르침 대로 내가 근무하는 부대에 정식 원불교 법회를 개설 해야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같이 근무하는 지휘관에게 전반적인 활동 계획을 보고했다.

내가 모신 지휘관은 기독교 신자였지만 원무 사령을 받아 활동하게 된 것을 축하해 주며 흔쾌히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었다.

하지만 처음 교화가 문제였다. 무종교 위주로 교화를 해야되는 상황인데 이미 훈련소를 거쳐온 병사들은 1인 1종교를 갖고 있어서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어떠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대종사의 법을 전할 수 있는 법회개설의 희망을 가지고 가장 가깝게 근무하는 병사들 가운데 불교에 신심을 가지고 있고 수계를 받지 않은 병사 3명을 면담하고 원불교란 종교를 성의 있게 설명해 주었는데 반응이 시원찮았다. 그 병사들을 돌려보내며 1주일 동안의 시간을 주고 다시 면담을 했지만 부정적이었다.

그 후 번뇌하고 있던 시기에 한 달이 지나 그 병사들이 원불교 법회를 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감격, 감동 그 자체였다.

그래서 3명의 병사를 군종활동 처음으로 원불교 교도로 입교 시킨 후 부대 간부 3명을 추가로 입교 시키고, 상급 지휘관에게 부대내 정식 원불교 법회 개설 승인을 얻기 위한 계획을 보고를 하게 됐다.

법회개설 관련 보고를 실시한지 한 달이란 시간이 무심하게 흘러갔다. 얼마나 애를 태우며 간절했던 시간이었던가.
밤잠을 못 이루고 기도하고 염원하고 애를 태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간절하게 염원하고 있을 때 새벽꿈에 좌산상사를 뵙게 됐다. 아버지 같은 편안한 모습을 뵙게 된 것이다.

그 다음날 상급지휘관이 부대를 방문하게 됐고, 부대 방문 시 내게 부대에서 원불교 법회를 열어도 된다는 확답을 들었다.

그는 "원불교는 아주 훌륭한 종교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 날, 또 다른 설레임으로 밤잠을 못 이뤘다.

그 후 경기인천교구와 양평교당 이자복 교무의 도움으로 부대 내 6.5평 시설에 일원상을 봉안하고 법회를 개설하게 됐다.

교화를 지속해 10여명쯤 법회를 보고 있을 때 쯤 충남 태안으로 전출을 가게 됐다. 그 법당은 부대 군종장교의 반대로 폐쇄되고 민간 성직자 자격으로 법회를 보고 있던 양평교당 교무도 출입이 불가하게 됐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강한 진리와 우리 교단이 주세불 회상임을 느끼게 됐다.
왜냐하면 법당이 폐쇄되고 교무가 법회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병사들끼리 법회의 맥을 1년 넘게 이어온 것이다.

<이천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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