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상생정치 꿈, 탕평정치는 이 시대가 구현 할 과제

▲ 정현태 남해 군수.

보통의 정치인들은 정치입문을 앞두고 '도덕과 상생의 정치실현, 공약을 꼭 실천하는 정치인'을 외친다. 그러나 막상 그 문에 들어서고 나면 공약을 망각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는 것을 느껴왔다. 시민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정치인이 사는 세상은 같은 현실일진데, 체감하는 것이 너무 상이하다. 왜 일까?

이러한 물음을 안고 6·4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정현태 남해군수를 만났다. '마음을 공부하는 군수'이기에 낙선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6년간 애정으로 가꿨던 남해군의 군정 활동을 마무리 중이었다.

그동안 언론에서는 '마음을 공부하는 군수 또는 서민들의 군수'라는 타이틀로 유명세를 탔던 정 군수. 마음을 공부할 만큼 크고 작은 경계가 많았던 군정활동. 이번 인터뷰는 6·4지방선거의 당락과 무관하게 약속돼 있었다.

그는 첫 마디로 "낙선자를 인터뷰하는 신문은 원불교뿐일 것이다"고 웃음으로 맞았다. 12일 오전 남해군정실에서 '마음공부와 정치활동'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 남해군수직을 마무리 하는 소감은.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심정을 담은 시를 외운다. 이번 선거결과를 수용하며 '정호승 시인의 봄길'로 심경을 대변하고 싶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로 시작되는데 진정한 의미에서의 길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스스로 위로를 하기도 하면서 희망을 갖게 하는 시이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 이제 당선자는 산등성이 타는 공부를 하고 낙선자는 골짜기를 걸어가는 공부를 하는 것 같다.

여래의 만능을 읽히려면 능선도 타고, 골짜기도 타야한다. 6년간 했으니 졸업할 때도 됐다. 졸업을 생각하니 설렌다. 긴장하면서 들고 있던 모든 짐 내려놓으니 자유롭고 설레는 것 같다.

- 정치나 시·군 행정에서 '도덕과 상생정치 실현의 길'에 대한 견해는.

도덕과 상생정치는 탕평정치로 꼭 실현돼야 한다. 남해에는 유배문학관이 있다. 이 유배는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산물이었다. 정치적 반대세력을 죽이거나 유배를 보내야만 했던 붕당정치는 오늘날 당쟁으로 얼룩진 우리 정치의 모습과 일란성 쌍생아라 본다. 그래서 붕당정치를 공존과 상생으로 전환시킨 영·정조시대 76년의 탕평정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탕평정치는 〈서경(書經)〉 홍범편에 나오는 '대중지정(大中至正)' 즉 정치는 크게 중도로 가는 것이 지극히 바른길이라는 이념에 바탕한다. 이를 최초로 탕평이론화한 사람은 숙종 때의 박세채다. 박세채는 정치와 정책의 판단에서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가리는 시비론(是非論)이 극단적인 당쟁을 부르기 때문에 우열론(優劣論)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관점의 대전환이다. 이 이론은 훗날 영조의 탕평정치로 개화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여·야 경쟁은 탕평과 상생의 정치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 어느날 전통시장에 들렀다가 한 어르신이 "요즘 정치는 조선시대만도 못하네"라고 일갈했다.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의 상소문처럼 들렸다. 개인적으로 상생정치나 탕평정치는 이 시대에 반드시 구현해 내야할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 무소속 출마를 고집하는 이유는.

기초단체장 만큼은 정당이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호남의 색깔이 분명한 것을 볼 때 안타깝다. 각 지역에서 지역 우세의 정당에 공천되면 정책은 보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선시킨다. 그러면 눈 먼 정치가 된다.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무소속을 고집한다.

- 집무 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은.

10조원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사업 공식유치를 앞두고 있다. 이 사업만 성공시키면 앞으로 남해군 50년 지역경제를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이 사업을 끌어 낸 것은 큰 성과이다. 또 조도나 호도에 400년 동안의 숙원사업이었던 물 문제를 해결한 것, 창선면에 20억을 들여 민원 해결 등 여러 사업들이 있다. 하지만 군민들은 삶에 직접 연계된 사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번 군수 출마는 분명히 욕심인 줄 알았지만 10조 상당의 신재생에너지 사업 기틀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듯이 민심도 그렇다.

〈한겨레신문〉 기사 읽고
마음공부와 인연
"꽃이 떨어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해,
떨어져야 새 생명 키울 수 있어…"


- 천주교 신자이면서 마음공부와 인연이 된 사연은.

마음이 가난하기 짝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전교조활동 7년을 하며 전교조 합법화에 대한 꿈이 사라졌다. 이때 수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나눠서 단계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을 다스려 보려고 가톨릭 피정, 티그룹 상담연수, 불교의 동사섭 등 많이 다녔다. 그런데 대부분 출세간법이었다. 당시는 좋았으나 1주일이 지나면 약효가 떨어졌다.

〈한겨레신문〉에서 정전마음공부 인터뷰를 봤다. 참 신기했다. 당시 봉천초등학교 마음공부 이야기가 소개됐다. 선생님과 학부모의 마음공부 한 기사를 읽고 바로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마음공부하면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의심이 똑 떨어지게 해결됐다. 수신된 만큼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고 안과 밖이 같음을 알았다. 내게는 깨달음이었다.

2002년도에 선거에 나가 낙선하고 빚더미였다. 생계도 막막하고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성주 삼동연수원을 찾아가 당시 박선태 원장을 만났다. 박 원장은 "정치는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 시작해야 백성을 안을 수 있다. 오로지 공심으로 가야한다. 그래야 공도의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다"고 충고했다. 모든 것을 다 잃었으니 이제 정치를 시작해야 할 때임을 깨우쳐 준 것이다. 이후 지금까지 군정일기를 마음공부에 대조하며 기재했다. 그리고 '마음을 공부하는 군수'가 됐다. 마음공부도 이제 대각 시대를 지나 천각, 만각의 시대가 온다. 출세간 면벽 하는 것보다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경계 따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2011년 10월, 일본을 다녀 온 후 한 말 중에 '소통은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어떠한 상황에서 이러한 자각을 갖게 됐는지.

2008년 보궐선거에 군수로 당선된 후 언론에서는 '선거법 위반 무협의'로 결론 났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마치 비리가 있는 것처럼 공격했다. 당시 나는 '열심히 하고 깨끗한데 저 사람들은 왜 나를 이해 못하나'생각했다. 마음을 완고하게 닫고 있었다. 그러니 저 사람이 못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내가 너무나 강한 창문을 짜 놓고 견제하고 있었다. '이 문을 없애야겠구나'하는 자각이 왔다. 이후 모든 경계를 편안하게 넘어섰다.

조선시대 면앙정 송순은 '십 년을 살면서 초가삼간 지어 냈으니 나 한 칸, 달 한 칸, 맑은 바람 한 칸을 맡겨 두고 강산은 들일 곳이 없으니 이대로 둘러 두고 보리라'는 시조를 지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 그동안 느꼈던 원불교와 원불교 사람은.

원불교는 참 품이 너른 종교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데에는 '진리는 하나'라는 확신이 있어서다. 특히 대산종사는 "대종사와 이 회상을 참으로 알게 되면 어떤 난리가 나고 어떤 경계가 온다 하더라도 절대 흔들림이 없다"는 확신을 주었다. 원불교 교도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에 비해 작다. 하지만 그 법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결국 새 세상을 열어갈 주인공이 될 것이다. '교당에 나온다 안 나온다'로 교도라 말하는 것 보다 생활 속에서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천주교 신자로 〈성경〉을 열심히 보고 주일엔 성당 나가지만, 대종사께서 밝혀준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을 늘 염원하고 있다. 이는 '진리는 하나'라는 확신과 가르침을 받았기에 가능하다. 너무 감사하다.

- 앞으로 계획은.

선거를 마무리하면서 자문자답을 했다. '정현태, 너 최선을 다했는가. 최선을 다했다'는 울림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울렸다. '당선과 낙선은 하늘의 뜻이구나. 그러니 내가 낙선을 해도 하늘이 고민할 것이다. 내 몫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에 이르니 속이 편했다. 선거 전날 바닥에 물이 흥건한 어시장에서 상인들에게 큰절을 했다. 그때 심경이 '정현태도 원래 없건마는' 경지를 뼈 속 깊이 느꼈다. 그러고 나니 그냥 몸이 움직였다. 순간 상인들도 울고 나도 울었다.

겸손을 넘어 가장 겸허한 자리가 땅바닥이었다. 그 순간 내가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렇게 내가 없이 우주와 통했다. 순간이었지만 그 느낌이 참으로 좋았다. 꽃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 자리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 떨어 져야 또 다른 생명을 키울 수 있다. 다시 꽃피울 준비를 할 것이다.

정현태 남해군수 약력

1990 서울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1997 남해신문사 편집국장
2000 남해인터넷뉴스 대표이사
2003 청와대 NSC 홍보담당관 및 전략기획실 행정관
2007 한국도로공사 이사, 동북아 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 기획단 기획팀장
2008 제42대 경상남도 남해군수
2010 제43대 경상남도 남해군수

저서/군정일기
〈달리는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는다〉
〈인생은 삼세판-마지막 활시위를 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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