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22cm x 18.9cm
이 '기념식 거행 통지서'는 세로쓰기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좌측 상단에 발행번호 불총공발 제38호 발행일자 시창25년 10월8일이 적혀있고, 발행기관인 불법연구회 공익부가 한문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직인이 찍혀있다.

수신자명(백봉시화), 기념식 봉행에 관한 통지와 그 내용을 '시창25년 9월8일 6시에 본회 총부 대각전에서 귀하의 부군 노창기 씨의 열반기념을 여러 가지 장엄리에 경건히 거행하였삽기에 이로써 통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다음 이어서 기념식에 참여했던 주례자와 기념주의 대리인, 기념식을 통한 헌공금의 수입과 그 내역이 기재되어 있다.

이 기념식 거행통지서를 살펴보면 초기 교단 의식진행의 확실한 행정관리체계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일본의 식민지 치하에서 투명한 회계와 기록은 교단을 해체하고자 감시하며 탄압하던 일본 순사들마저도 국가를 맡겨도 능히 다스릴 수 있는 교단이라 감탄하였던 증거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초기 교단으로의 회기는 단순한 '추억의 회기'가 아니라 우리의 사명감에 목표가 있음을 알려주는 시금석이라 본다.

원불교 초기 교단에서는 열반 의식수입금 총 관리를 공익부에서 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열반재를 지낸 이후 재주들이 관련 헌공내역을 직접 확인할 수가 있었다. 또한 재주의 환경에 따라 대리인을 통하여 재를 지낸 것도 볼 수가 있었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박물관에서 장학조교, 유급조교, 교수 등의 직책으로 오랜 시간을 근무하면서 좋은 유물들에 약간은 무딘 생각을 갖게 된 면도 있다. 그래서 총부 역사박물관 작업을 할 때는 유물들을 다른 유물들과의 차별화된 식별을 하기 위해 유물의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자료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행여 나의 얄팍한 선지식 수준으로 유물이 과소평가 될까봐 불안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불안감은 나의 지식 정도의 대소 뿐 아니라 그 역사적 의미의 퇴색이 더 큰 걱정으로 다가온다. 과거 대학에 있으면서 박물관 작업을 할 때와 현재 원불교 역사박물관 작업을 할 때와는 확연한 차이를 두 가지로 축약할 수가 있겠다.

첫째는 세상의 어떤 유물이 나를 이토록 흥분시킬 수 가 있겠는가? 둘째는 이 같이 중요하고 자랑스러운 교단 유물의 완벽한 미래를 지금 상태에서 어찌 장담할 수가 있겠는가?

첫째의 흥분은 70여 년 전 대종사 생존 당시의 사용되던 '기념식 거행 통지서'와 같이 철저하고 격식 있는 행정관리가 있었던 초기교단의 완벽함을 상상하는 것이다.

둘째의 불안함은 위와 같이 타교단의 추종을 불허하는 소소한 초기교단 유물의 훼손상태가 너무 심하고 그것을 보관하는 장소의 협소함과 초라함이 늘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교단100주년을 맞이하며 앞으로의 5만년 이상 영원할 주세교단의 이상향이 완벽하게 갖춰지길 간절히 기원한다.

<원불교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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