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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교수 칼럼 / 원불교, 미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
해외 교수 칼럼 / 원불교, 미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
  • 하상의 교무
  • 승인 2014.06.27
  • 호수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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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상의 교무 / 미주선학대학원 원불교학과 교수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는 2002년 개교 이래 꾸준히 미국인을 교화 할 수 있는 예비교무를 양성해 왔다.

2008년부터 원불교학과에서 강의를 하면서 동시에 원불교학과 책임을 맡게 됐고, 학생모집을 위해 한국에 있는 영산선학대학과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예비교무들을 만나고 미국교화에 도전을 하도록 학교차원에서 여러 방면의 노력을 해 왔다.

교정원 교육부로부터 한국 학생만 바라보지 말고 미국인 인재를 발굴해 양성하라는 촉구를 받아 온 터에 한 미국인이 (지금의 원대선) 지원하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여 이제 내년이면 출가식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막상 앞으로 미국에서 교무로서 살아가야 할 현실을 바라보니 아직 준비도 안된 것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문화차이로 한국인 교무가 중심이 되어 있는 교당에 어떻게 같이 살 것인지, 급여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결혼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미리 연마해야 할 사안이 많았다.

그에 앞서 교단이 미국 상황에 맞는 교무규정에 대해서도 아직 준비가 돼있지 않은 상태이다.

물론 한국인 2세로 이미 교무가 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부모님이 신심이 깊은 교도들이고 한국문화에 친숙한 상황이라 교단적으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물론 현지인들의 문제제기로 머리와 복장문제는 한국인 교무들과 달리 좀 자유롭게 하도록 했지만 그 외 생활문제는 아무도 걱정하지 않은 듯 하다. 물론 교단적으로는 아메리카나 다른 서구와 달리 인도, 네팔 등의 나라에서 출가한 교무들이 소수 있기는 하지만 그 쪽은 불교의 뿌리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 출가수행이 보편적인 문화를 기반으로 해 상황이 미국과는 다르지만 그들 역시 그들만의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미국이 자유롭고 개방적이기도 하고 20~30년 사이 불교가 많이 보급되어 있기는 하지만 출가수행자나 출가교무들이 미국인들에게 자신들의 기본생활을 유지하면서 교당의 생활에 의존하기에는 아직도 멀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중심축으로 있는 교당들은 어느정도 자립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미국인 교화가 축이 되어 있는 교당들은 아직도 여러 인연들을 통해 한국에 의존하거나 간혹 일을 하며 교당과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교무가 정당한 직업을 갖고 수행과
교무로서의 활동을 할 수 있는 전무출신 규정 정립이 필요"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온 불교 승려들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승복을 입지 않고 일을 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저런 고민들이 머리 속에 가득한데, 미국인 예비교무도 나름 생각이 많은 모양인지 후배교무(본인을 지칭)의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주저 없이 본인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선배교무로서 조언을 한다면 교단의 현실상 독신을 권한다고 했다. 그리고 만약에 결혼을 선택 한다면 정토가 될 사람이 남편의 급여가 거의 없을 수도 있는 교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가정과 자녀교육을 주체적으로 꾸려갈 수 있는 서원이 있고 남편인 교무의 직업을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기쁘게 지원할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고도 함께 가정을 만들어 살다가 보면 여러 어려움과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저 남편 될 사람이 교무라는 것 외에 경제능력이나 여타의 일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지 못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그 가정이 어떻게 화목을 유지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독신으로서의 여러 장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라고 하기도 했다. 그에 대해서 그 예비교무는 원불교가 부부와 자녀가 있는 세간생활과 불법수행을 병진하는 것이 이념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물론 대종사의 가르침은 분명히 그렇지만 현재 교단에서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급여를 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이라고 구차하게 답했고, 그는 그러면 직업을 가지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그것도 가능한 방법이며 과거 남자교무들 가운데 그러한 분들도 있었다고 대답했으나 필자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과연 우리가 그것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솔직히 한국인 남자교무들에게도 필자는 결혼이 허용돼 있지만 더 깊이 생각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즉 결혼이 출가수행에 그리고 교무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본인이 잘 생각하고 결혼생활과 교무생활을 균형있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설 때 해야지 결혼이 허용되어 있으니 해도 된다거나 하는 것은 교무로서 책임있는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본다.

개인의 사고나 생활방식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에서 더더구나 남녀나 피부색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평등의식이 철저한 미국에서 여자교무에게는 결혼 불허, 남자교무는 결혼 허용이라는 어색하고 어정쩡한 교무규정을 그대로 두고서는 미국문화 속에 원불교가 뿌리 내리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남자교무는 결혼이 허용돼 있으니 결혼으로 인해 초래될 문제에 대한 확실한 대비가 없는 상태에서 결혼을 하는 것도 그냥 간과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제는 남녀를 불문하고 교무가 정당한 직업을 가지고 가정도 꾸리면서 수행과 교무로서의 활동을 할 수 있는 교무규정이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하루 속히 정립돼야 할 것이다.

현재 전무출신정신은 불고가사(가정사에 매이지 말라는 의미)하고 교단의 명에는 수화라도 불피하라는 것인데, 이제는 현대사회에서 수행과 교화 그리고 가정유지를 위한 전무출신규정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라고 본다. 특히 미국에서는 더욱 절박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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