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이 준 최고의 선물, '마음공부'

훈련정진의 달 7월을 맞아 '마음담론' 기획을 마련했다. 1주는 현장전문가들이 본 심지와 경계, 2주는 불교학 관점에서 본 심지와 경계, 3주는 심리학 관점에서 본 심지와 경계, 4주는 마음공부사회화 관점에서 본 심지와 경계로 그간 논쟁됐던 마음공부의 원리와 실천방안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 권도갑·김관진 교무가 중앙총부 마음과 마음 카페에서 마음공부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권도갑 교무는 여성가족부 비영리단체인 '행복한가족'을 운영하고 있으며 원광디지털대학에서 마음공부 방법론을 강의하고 있다. 김관진 교무는 상동교당 마음공부방과 인터넷 다음카페 '정전마음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오랫동안 기다린 만남처럼 대담 내내 무척 행복했다. 100년성업의 화두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마음공부 사회화를 향해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심지와 경계'란 주제로 그 물음에 답해본다.

그 첫 문열이는 교화훈련부 권도갑 교무(이하 권)와 상동교당 김관진 교무(이하 김)다. 그들의 진솔하면서도 명확한 마음공부 원리를 들어본다.

심지(心地)는 무엇인가

권-심지는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없는 자리다. 그렇다면 무엇이 요란하게 하는가? 정산종사는 '요망한 분별심이 들어서 그러하다'고 말했다. 원래 나는 누구에 의해서도 전혀 상처받지 않는다. 모든 상처로 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롭다. 괴로움은 내면의 문제, 즉 '집착'에 의해서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김-모든 것은 진리를 떠나지 않는다. 본래 선악업보가 끊어진 자리에서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는 것이다. 무량세계로 전개하는 우주만유 뿐만 아니라 심지의 세계도 선과 악이 성품을 떠나 일어난 것이 아니다. 성품을 떠난 마음은 없다. 이를 '나는 마음'과 내는 마음'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집착'에 의해서 괴롭다는 것은 동의한다. 다만 누구나 경계를 당하면 '나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도 진리성으로 봐야 한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이 난다'는 인과의 원리로 보면 그대로가 묘유다. 단 '내는 마음'은 나의 몫으로 이는 각자의 수행과 공부정도에 따라 다르다.

권-심지는 절대 자유의 경지다. 그런데 무명에 가리면 사람이 '착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흔히 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 의식이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더 들어가보면 내 내면의 문제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마음공부에서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가져온다. 망상과 집착으로 인해 모든 분별심이 일어난다.

어머니가 자식을 꾸짖을 때 속상해 하는 것은 자식에 대한 바람과 욕심 때문이다. 그것을 내려 놓을 수 있다면 그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대종사의 꾸지람을 듣는 제자들 마음에는 불평이 없었다. '거룩한 분노'였다. 소태산은 제자들을 일념미생전 도리로 대한 것이다.

김-'원래 없건마는'의 수행도 중요하다. 청정심과 본연성을 기르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이 동할 때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분별성 주착심도 모두 자성의 발현임을 알아차리는 그 영지, 공적영지의 광명 따라 나타나는 자성을 세울 때 경계는 경계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마음'의 원인을 직면해야 하며,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수용할 때 비로소 본질에 들어갈 수 있다.

경계(境界)란 무엇인가

권-'경계가 나를 요란하게 하는가?', '경계는 과연 실재하는 것인가?', '지금 이것이 나를 요란하게 하는가?'를 살펴보자. 다시말해 경계가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경계를 따라 있어짐은 무명에 가린 마음이요, 내가 만든 허상이다. 내 내면의 문제를 내려 놓으면 경계는 결코 힘이 없다. 일체 세상은 마음의 연기다. 내가 분별하지 않으면 경계는 없다.

김-이 점에서 경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근본에서는 만난다.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것도 자성의 본연성이다. 우리는 무수한 세월을 살아가면서 나의 심신작용에 따라 함장된 인(因)이 있다. 밖의 상황은 연(緣)이다.

정전마음공부에서는 있는 그대로 나타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일기를 기재하고 문답을 통해 궁극을 찾아감으로써 그 분별의 실상인 '원래 없건마는'의 경지를 체득하게 한다. 곧 경계를 통해 나의 분별성과 주착심을 아는 순간 정신차림으로 원래자리를 회복할 수 있다.

근본과 가지에서 시작하는 공부

권-마음공부의 시작은 경계가 없다는 것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경계가 있다고 믿을 때 실제로 그 현상이 눈 앞에 나타나 요란해지고 어리석어지고 그름이 있게 된다. 처음부터 없는 것이다. 미국의 젊은 붓다로 알려진 캔 윌버는 '무경계(無境界)'를 말한다. 이를 자각하면 바로 자성이 세워진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 곧 일체개공(一切皆空)을 뜻한다.

김-마음의 가지로부터 뿌리로 들어가는 공부법이나 뿌리로 부터 가지에 이르도록 전체를 이해하는 방법이나 결국 일원의 진리인 대소유무, 즉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전체적 관점을 세우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마음'을 그대로 알아차려야 한다. 이것을 집착이요 허상이라고 규정해서는 안된다. '경계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진공과 묘유는 동시성이다. 둘로 나눠볼 수 없다. 번뇌가 곧 보리요, 파도가 바다를 벗어나 일어나지 않음과 같다. 바다 자체에는 파도가 없지만 바람과 같은 외적 조건인 경계를 따라 있어진다. 분별성과 주착심 또한 성품을 떠나 일어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성품의 변한 것임을 알아차리자는 것이다.

정전마음공부는 경계로 인해 일어난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경계는 공부꺼리요, 공부찬스다. 가지와 잎으로 부터 뿌리로 들어가는 공부법을 제시하고 있다.

권-십이인연법을 보면 무명에 가려 윤회한다. 이를 내려 놓는 것이 진공묘유의 수행이다. 텅비면 공적해지고 신령한 지혜광명을 나툰다. 구름이 가리면 세상이 어둡다. 무명이란 것은 자성의 빛만 비추면 소멸된다.
곧 내가 의식이 깨어나면 세상은 아무 문제가 없다. 경계가 나를 괴롭히고 상처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일어나는 감정을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다. 경계를 탓하고 원망하고 불평불만하게 된다. 나의 집착이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어떤 경계도 책임지고 넘어설 수 있다.

김-적극적으로 동감한다. 경계로 부터 일어난 마음을 진리성으로 인정한다고 해서 공부가 다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내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것이 수행이다. '나는 마음'을 그대로 알아차려서 경계에 끌리지 말고 원만구족하고 무과불급하고 불편불의하여 지공무사하게 사용하자는 것이다. 각자의 깨침 정도에 따라 자성을 세우는 정도와 깊이가 다른 이유다.

100년성업과 마음공부 사회화의 과제

권-요즘 '감사발전소를 가동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들 각자 각자가 '행복의 창조자'임을 확인하자는 것이다. 세상은 온통 감사할 일 뿐이다. 이 운동으로 100년성업 마음공부 사회화를 만들어 가겠다.

김-마음공부 사회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앞으로 마음의 문제에만 한정짓지 말고 '영육쌍전'의 관점에서 '몸살림'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길 기대한다.

권도갑 교무,
"내 내면의 문제를 먼저 내려 놔라. 그럴 때 경계는 힘이 없다"

김관진 교무,
"경계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 경계와 직면해야 본성에 합일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