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 법위향상의 간절한 부촉

대각여래위는 대자대비로 일체생령을 제도하되 만능이 겸비할 뿐만 아니라, 천만방편으로 수기응변(隨機應變)하여 교화하되 대의에 어긋남이 없고 교화 대상이 그 방편이 방편임을 알지 못한다. 방편은 '그때 그때의 경우에 따라 편하고 쉽게 이용하는 수단과 방법'을 뜻하는 말이다. 일체생령의 모습이 천태만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성자들은 대자대비의 법력으로 천만방편을 써서 일체 생령을 제도한다.

천만방편으로 수기응변하여 교화한다는 것은 온갖 수단과 방법이 그 기틀(대상과 상황)을 따라서 자유자재로 변화하여 대응한다는 뜻이다. 대각여래위는 대자대비의 만능을 갖추어 있기 때문에 천만방편으로 수기응변하더라도 그것이 대의에 어긋나지 않으며, 당연히 교화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방편이라 인식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대자대비의 호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중생의 교화는 이처럼 천만방편으로 수기응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편을 대각여래위가 갖춘 대자대비의 호념으로 베풀기 때문에 그 대상과 상황과 시의(時宜)에 들어맞을 뿐만 아니라 모든 성자들의 본의와도 통하여 결코 대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여래가 베푸는 교화의 방편은 무위이화의 법 그 자체로써, 의도나 작위적으로 그 방편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천만방편 수기응변은 교화하는 여래의 무유정법에서 무위이화로 나타난 대자대비심의 발로이기 때문에 교화 받는 중생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여래의 대자대비의 호념으로 받아들일 뿐이며 그것을 방편으로 알 수 없다. 이러한 모습을 객관적인 사실로 밝히면서 '교화 받는 사람으로서 그 방편을 알지 못하게 한다'고 기술 하였을 뿐이다.

우리 공부인은 모두가 성불제중의 서원으로 살아간다. 자기 수행과 중생 교화를 아울러 하는 것이 공부인의 영원한 과업이다. 여기에서 출가위나 여래위의 심법에 이르지 못한 공부인이 교화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자기만의 능력으로 대의에 어긋나게 교화의 방편을 쓰다가 교화 받는 사람이 방편을 알아채면 교화를 그르치는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그 수준에서의 교화가 대의에 어긋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법강항마위의 정사라 할지라도 그 이상의 법력을 갖춘 성자인 스승님과 심심상련하고 법법상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각여래위는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동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사람의 위'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산종사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다'는 것은 활선 공부로 육식이 육진 중에 출입하되 섞이지도 아니하고 물들지도 아니하여 매사에 중도행을 하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함을 이름이니, 일체 경계에 부동심이 되고 모든 일이 때에 맞아서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화이불류(和而不流)''화광동진(和光同塵)'이 되는 것을 이름이니라. 또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다'는 것은 일이 없을 때는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준비 공부를 하자는 것으로 선정삼매와 나가대정과 적멸궁전과 대적광전과 무위대행의 정정 공부를 하자는 것이니라."

대종사께서 법위등급을 제정한 것은 우리 모두가 대각여래위를 목표로 공부하라는 대자대비의 호념이며, 정기로 법위사정을 실시하는 것도 나의 법위향상을 위한 간절한 부촉임을 잊지 말자.

<중앙중도훈련원>

※다음호부터는 김경일 교무가 〈대산종사 법어〉 적공편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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