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승·업진봉 법문 받들어
깊은 신심과 한량없는 공심

▲ 조성언 교무/중앙총부 법인사무국
이번 대산종사탄생100주년 기념대법회를 보면서 내게 주신 대산종사의 은혜를 생각해 봤다. 당시 중학생 사춘기에 있었던 나는 방학이 되면 대산종사가 계신 곳을 방문해 며칠씩 머물며 생활하게 됐다. 서원이나 신심이 없던 그 시절, 대산종사를 통해 교단을 바라보는 것은 신기하고 또 다른 세상이었다.

야외에 법석을 마련해 찾아오는 교도들이나 원불교학과 학생들에게 법문 하는 대산종사의 모습, 또한 감상담과 보고를 깊이 경청하는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성'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산종사를 뵙는 선진들이나 교도들이 그렇게 깊은 존경과 신성을 다 갖추어 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았다.

한 교도는 먼 지방에서 올라 와 대산종사를 뵙자마자 가랑비로 젖은 땅에 덮썩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서원관 학생이 감상담을 발표하면서 눈물로 고해성사를 하듯 하다가도 대산종사의 따뜻한 말씀과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금세 법잔치가 돼 웃음마당으로 변화되는 모습 등 참으로 알 수 없는 광경들은 나의 내면에 깊은 충격과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완도소남훈련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단의 원로 선진들이 대형버스로 찾아와 법문을 받드는 날이었다. 대산종사는 이날, 숙승·업진봉이 보이는 야외에 법석을 펼치게 했다. 대산종사는 황직평 원로교무에게 "〈무심결〉 법문을 해석해 줘라"고 말했다.

당시 해석을 들으면서 〈무심결〉은 여러 고전에 나오는 마음자리를 밝혀 놓은 글들을 모아서 정리된 것으로 생각됐다. 법문이 끝나자마자 나는 황 원로교무가 가지고 있던 법문 한부를 달라고 해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으며 시간이 되면 내 스스로 이것을 해석해 볼 작정이다.

그런데 이날 대산종사와 원로 교무들이 둥그렇게 앉아 법문을 받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그것은 그분들의 모인 자리 위로 뿌연한 기운이 안개처럼 어려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른한 밝은 오후 시간대라 내 눈이 잘못돼 허상을 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그 광경은 확연했다. 도무지 궁금해서 옆에 앉아 있는 교무에게 "저 위에 안개처럼 끼었는데 보이세요?"하고 물었더니 "무슨 말을 하냐"며 그냥 넘겼다.

그날 이후 나는 이 현상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대산종사는 당시에 숙승봉과 업진봉을 가리키면서 "숙승은 쉬어가는 스님이라는 뜻으로 선정 삼매에 들어 몸과 마음이 크게 쉬는 것이다"며 "업진은 본래 걸릴 것도 없는 청정한 자성에 들어가 그 업을 다한다"고 현재 〈대산종사법어〉 적공편에 나오는 법문을 설했고, 법문이 끝나자 반드시 숙승·업진봉 글 한수를 노래말로 부르도록 했다.

숙겁에 쉬어가는 스님네들 스님네들/ 삼세업장이 다 쉬었으니 개운하리 개운하리/ 다실랑 짓지말고 깨끗하게/ 다실랑 짓지말고 깨끗하게, 생각해보니 나는 숙승·업진봉에 대한 법문을 이미 여러 차례 받들었고, 이날 〈무심결〉 법문은 더욱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았다. '깊은 신심과 간절한 서원과 한량없는 공심으로 가득한 교단의 원로 스승들이 모였으니 과연 그 기운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지나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수학하면서 내게 〈무심결〉을 통해 법계로부터 출가를 승인 받은 날이 이날이 아닌가 생각됐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고민을 하고 이 공부 이사업을 놓으려고 해도 놓을 수 없었던 아주 소중한 기연이 되었던 것 같다.

총부에 사는 은혜를 체감하며, 그날 숙승·업진봉이 보이는 자리에서 대산종사와 원로 스승으로부터 느꼈던 소름 돋는 듯한 기운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철없던 그 시절보다도 오히려 지금 더 간절한 만남을 기다리는 것은 전무출신으로서 서원과 공심을 챙기고 대산종사의 은혜가 그립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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