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 작품보다 종교적 배경의 대작이 많이 나와야"

▲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꿈만 좇아 살지 말라. 대신 인생을 살다보면 여러 전기(轉機)를 만나게 된다. 자신이 처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다보면 우연한 기회가 찾아온다.'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며 김동호 위원장(장관급)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9일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광화문 kt 건물 내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를 찾았다. 올해 76세인 그는 인터뷰 내내 노년의 성숙함보다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열정이 말과 행동으로 배어 나왔다.

-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문화공보부(현 문화관광체육부)에서 28년간 근무하다가 퇴임했다. 이후 영화진흥공사 사장과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내외 영화계 관계자들과 교류해 왔다. 그 덕분인지 젊은 영화인들이 나를 찾아와 부산국제영화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초대부터 조직위원장을 15년간 역임하게 됐다. 행정가로 있으면서도 영화진흥법 제정에 앞장섰고,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해왔다. 특히 공산권이 개방하기 전 모스크바 등 동유럽에 한국영화를 소개했는데 임권택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여배우 강수연 씨가 제16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최우수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제하려면 기본적으로 예산이나 스폰서 및 국내외 유관기관의 협력체제가 필요하다. 조직력과 행정력이 뒷받침돼야 행사를 치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국내외 영화계 인물을 폭넓게 알고 있는 나를 찾은 것 같다. 물론 영화제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미 10년 전에 도쿄국제영화제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홍콩국제영화제는 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후발주자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차별화가 절실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시아 신인감독을 발굴해내는 프로젝트였다. 신인감독에게 제작비를 지원해 주고, 홍보를 맡으면서 부산국제영화제는 3~4년 사이에 아시아권의 대표적인 영화제로 발돋움하게 됐다. 후발주자의 한계를 차별화된 목표설정으로 극복해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 최근 단편영화를 제작했다고 하는데.

단편영화 'JURY'로 영화감독에 데뷔했다. 22년 가까이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해오면서 영화도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JURY'는 단편영화제의 심사 뒷이야기를 배경으로 나의 경험담을 담아냈다. 그러나 허구적인 요소도 가미돼 흥미를 끌었다. 영화제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들 간의 치열한 언쟁은 급기야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려냈다. 치열한 논쟁을 벌였지만 결국 영화 자체도 한갓 꿈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마무리 했는데 작품의 모티브는 〈장자〉의 나비 꿈에서 차용했다. 두 번째 작품 구상도 다 마쳤는데 문화융성위원장을 맡으면서 영화제작은 미뤄졌다. 주제는 영화제 자원봉사자들의 생활을 그려낸 작품이다.

- 영화전문대학원 설립취지는.

단국대학교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을 설립했다. 대학원 설립을 위해 1년 동안 준비 작업을 해왔다. 많은 영화인들을 만나 무엇이 제일 필요하냐고 물으니 3D니 4D니 하며 기술적인 부분을 지적하더라. 현장을 다 둘러봤다. 그런데 기술의 전문인력은 충분했다.

문제는 영화의 기획력과 스토리텔링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영화전문대학원을 만든 것이다. 대학원의 성공을 위해 국내 최고의 감독,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를 교수진으로 확보했고, 산학합력을 통해 롯데그룹으로부터 매년 4억원 정도의 지원을 받아 장편영화를 졸업 작품으로 내놓도록 했다. 특화된 대학원은 장학금으로 교육하고, 연출력과 기획제작능력, 시나리오 등 3명의 전공자가 1팀으로 구성, 졸업 작품을 만들고 있다. 2012년 3월에 개원했는데 벌써 졸업생들의 장편영화 4편이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대상을 비롯해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 국제평론가상을 받았다. 또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하고, 홍콩이나 상해, 대만, 베니스영화제까지 초청되면서 대학이 세계적으로 영화를 잘 만드는 영화인을 길러내는 곳으로 성장하고 있다.

- 문화융성위원장의 역할은.

문화 정책 전반에 거쳐서 현장의 목소리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하는 동시에 자문하는 기구로 올바른 문화정책이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위원장에 취임한 이후 광역시와 도를 중심으로 의견을 수렴하는데 힘썼다. 지역문화의 현안문제들을 중심으로 문화예술인들과 만나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그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이밖에도 도서지역이나 문화소외 지역도 다녔다.

특히 10인 이하, 자본금 10억원 미만, 매출액 10억원 미만의 소규모 문화콘텐츠 현장을 둘러봤다. 그리고 그들의 애로점도 들었다. 10개월가량을 그렇게 의견을 수합해 만든 것이 문화예술분야 8대 과제다. 지역문화발전 5개년 계획수립과 문화발전 장기계획을 만들어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현장을 보면서 긍정적인 것은 마을단위, 지역단위의 자생적인 문화예술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융성에 아주 좋은 징조다. 수도권의 문화예술 쏠림현상은 경제 집중보다 더 큰 소외감을 준다. 지방은 이런 문화적인 격차를 완화해 주길 바란다. 문화 창작의 혜택을 골고루 누리자는 주장이다.

매 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교당도 지역사회의 문화예술적 기여 방안 찾아야


- '문화가 있는 날'은 무엇인가.

문화가치를 확산시키자는 뜻이 정책으로 반영돼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진행되는 '문화가 있는 날'이다. 개인이 문화 활동의 주체자로 향수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된 것이다.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의 의견을 받아 처음 시도된 것이다. '문화가 있는 날' 공연은 적어도 관람비의 반값 내지는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해 국민들이 문화생활을 하자는 취지다.

이 운동의 확산을 위해 현재 1400개의 기업이나 단체들과 MOU 체결을 했고, 기업들은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연말까지 2000개 단체나 기업의 동참이 목표다. 문화가 있는 날은 단축 근무까지 권장하는 쪽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명동성당의 경우는 격월제로 성당을 개방해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원불교 교당들도 지역사회에 문화 예술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 원불교의 문화예술에 대한 조언은.

원불교는 토종종교다. 외래종교와 다르다. 명작을 보면 종교적인 작품보다는 그 배경에 종교를 깔고 있다. 원불교도 교화목적의 의미보다는 근본 원리에 바탕한 창의적인 문학이나 미술, 뮤지컬 등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교화 매체가 된다. 한국의 종교이기 때문에 민족 혼을 끌어내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흑석동에 본부건물을 새로 짓는다고 들었다. 서울은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이 강북 강남 문화예술공간의 축이다. 흑석동은 강남북을 잇는 중간지다. 이곳에 문화예술공간이 들어서야 한다고 본다. 흑석동이나 상도동 등은 인구밀집 지역인데 문화중심센터를 건립해 원불교 사상과 문화예술이 접목되면 더 큰 교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원불교는 탄생부터 한국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뿌리를 내려왔다. 농촌의 근대화나 계몽운동에 힘썼고, 해방 전 저축조합운동 등을 통해 '잘살기 운동'을 전개해 왔다. 기본적으로 국민정신 개벽운동에 주안점을 두고 교세를 확장해 왔다.

원불교가 왜 한국에서 나왔는가. 정신개벽은 시대정신이다. 원(○)은 출발이면서 끝이다. 무한한 상징성을 가진 것이 원이라는 이야기다. 문화적으로 그렇다. 그래서 국민들 화합하게 융합하고, 포용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원(○)의 가치철학을 더 드러내 조명할 필요가 있다.

김동호 위원장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1961년 문화공보부 7급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 문화공보부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한 후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 1992년 예술의전당 사장과 문화부차관,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창설 및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비롯해 다수의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2004년 대통령직속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부위원장과 2005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현재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과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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