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혼은 태어남도 없고 죽지도 않는다. 다만 내용으로 변하고 그 다음 삶이 변할 따름이다. 내용으로 변한다는 것은 영적인 성장 아니면 쇠락을 말한다. 성장은 진급이고 쇠락은 강급이다. 삶의 구분은 크게 천상, 인간, 수라, 아귀, 축생, 지옥인 육도로 한다. 진급의 정도에 따라 나뉘기도 하나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육도 가운데 천상계가 가장 상위에 있지만 인간계에서 천상계의 낮은 경지에 있는 영혼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른 영혼이 있는가 하면 동물보다 못한 인간도 있다. 그러나 아주 높은 경지의 영혼은 축생계를 다녀오는 것처럼 육도를 초월해서 자유자재로 넘나들기도 한다. 진급의 극에 이르면 우주의 기운을 돌리거나 운행에 관여하기도 하나 반대로 강급의 극에 이르면 먼지처럼 우주를 떠다닌다. 여기에서의 우주는 시간과 공간 만이 아닌 영적인 세상까지 포함한다.

그런데 요즘 회자되는 이야기 가운데 어느 법사님은 누구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인간계에 산다는 것만도 힘이 크게 쓰이는데 거기에 게으르지 않은 수행으로 법사가 되었으니 천상계에서 한참 쉬었다가 인간계에 오는 게 일반적이다. 경지가 높은 영혼이 인간계에 올 때 안주처나 유희장을 삼지만 대부분은 사업장을 삼는다. 천상 영혼은 기본적으로 맑고 순수하지만 낮은 경지의 영혼은 지혜와 힘이 부족하여 자유롭지 못하여 인간계로 수행하러 온다. 인간계는 천상계보다 시간이 100배 가까이 조밀하여 밀도있게 수행하기 좋다.

영혼 세계 알게 되면 인간의 삶에서
영혼의 진급이 가장 중요한 일 임을 알게 된다


인간으로서 진급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은 삶이라는 현실에 진리의 의식으로 깨어 생활할 때다. 천상계의 높은 경지인 법계에 이를 정도가 되지 않을 바에야 인간계에서 수행하는 게 나은 이유다. 인지가 어둡고 힘이 없는 상태에서 영적으로 밝으면 많은 정보를 조절하지 못하여 오히려 모르는만 못하다. 그래서 진리적으로 인간의 몸으로 올 때 망각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수행이 깊어지려면 영혼의 세계를 보지 못하더라도 상식선까지는 알아야 한다.

현재는 수행자가 본다 해도 아주 작은 부분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라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여러 수행자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대체는 알 수 있다.

살아생전 항마한 사람이 열반하면 영가에게 법계에 쉬었다가 이 회상에 일이 있을 때 다시 와 일해 달라고 부촉하듯이 육도 가운데 인도가 가장 좋다거나 육도는 마음에 있는 것이 마치 합리적인 것처럼 여기는 오류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다. 영혼의 세계를 대체만 알아도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고 중요한 것이 영혼의 진급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요즘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사람 가운데 서넛이 천상에 대해 본 것을 가지고 물어온다. 이 정도는 이제 신통의 범주가 아닌 상식으로 내려오고 있어 다행이다.

<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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