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정화 교무 / 중앙청년회
원불교100년의 수많은 비전중에 청소년교화는 단연 으뜸이 되어야 한다. 청소년교화는 교단의 현재요, 미래이기 때문이다.

교단적으로 볼 때 청소년교화를 위해 크고 작은 변화들은 계속돼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청소년 교화는 고양이 목에 방울 거는 것 같은 일이 돼 버렸다.

여러 가지 대안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터널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다양한 시도와 대안이라야 비로소 청소년교화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을까?

감히 말하지만 문제가 있으면 본질을 고쳐야 하는데, 본질이 아니라 눈앞에 닥친 안건만을 조급히 해결하려 든다.

본질을 고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사교육에 찌든 우리의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기르는 새로운 교육의 장을 마련하자라고 주장한다면 학원 교습 시간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교육 철학을 바꿔야한다. 중소기업이 더욱 튼튼하게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대기업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공유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재벌 위주의 경제 환경을 손질해야 한다' 라는 글이 있다.

우리의 청소년 교화도 원기 100년을 맞이하여 더 늦기 전에 시도해야 할 변화는 이처럼 뿌리를 건드려야 하는 일이다. 그 변화는 분명히 힘겹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반면 겉만 손질하는 변화는 이보다 훨씬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겉만 손질하는 것은 단연코 지금, 그리고 미래 원불교 청소년교화의 변화를 이끌 대안이 될 수 없다.

요즘 사회적으로 가장 각광받는 단어는 창의력이다. 창의력은 새로운 원불교다움의 원동력이자 청소년교화의 핵심 능력이다. 그동안 교단은 답을 찾는 능력을 길러내는 교육을 주로 해왔다. 더 늦기전에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을 해야한다.

청소년교화를 담당하는 재가출가교도의 핵심능력은 창의력이다. 창의력은 기존에 누군가가 풀어놓은 답을 베끼는 것으로는 절대 길러지지 않는다.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를 보자. 아이들이 퍼즐을 맞추는데 조각 퍼즐을 잘 못 끼우면 금세 '여기에 끼워야지'라고 끼어든다. 아이들이 여기에 맞취보고 저기에 맞춰보다가 숱한 실패를 겪으면서 결국 정답을 찾아가는 그 시간을 용납하지 않는다. 교단의 청소년교화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청소년교화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시간과 공간은 여유롭게 허락되지 않는다.

얼마 전 '노력금지-재미있는게 이기는거다'라는 책을 접했다. 저자는 놀공발전소라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늘 갖고 산다고 했다. 하지만 그 불안이 자신을 이 자리에 있게 한 에너지라고 믿고 있다. 불안은 극복해야할 것이 아니라 잘 다루어야 하는 취급주의물품이라 한다. 불안은 불행과 동의어가 아니다. 불안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변수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불안하지만 재미있다고 말한다.

원불교100년의 비전. 청소년교화가 얼마나 중요한가? 청소년도 중요하고 교화를 담당하고 있는 청소년담당교무, 재가교도도 얼마나 중요한가? 그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주자. 다소 불안해보여도 그들 스스로가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곳에서 창의력이 생성되고 그곳에서 재미가 나오며 그곳에서 청소년교화는 성장한다.

원불교100년성업대정진 기도 3000일 회향기도에 '교단의 모든 청소년교화자들이 서원과 여건이 서로 잘 어울려 청소년과 교화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법신불 사은님 도와주세요' 라고 백두산 천지에서 기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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