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숨결 〈정전〉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 받아서…'

깨닫지 못하여 관념과 욕심 그리고 막 길들여진 습관으로 사는 안타깝고 사랑하는 이가 우주의 영혼이자 이치인 일원상을 있는 그대로 오롯하게 본받아서 살자는 염원과, 깨달은 자가 사랑을 담아 부촉한 것이 아우른 표현이다.

'우리'란 도반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여래는 이미 깨달음과 수행을 마쳤으므로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의 정서 속에서의 '우리'는 너와 나 그리고 함께 하는 이를 넘어선 의미가 있다. 부모가 아주 어린 자녀에게 "아유~ 우리 똥강아지"라고 하며 엉덩이를 툭툭 쳐줄 때의 '우리'는 아직 어리기만 하여 보살핌으로 잘자라길 바라는 사랑과 아끼는 마음이 담긴 말이다. 깨달은 이의 '우리'에는 부모가 어린 자녀를 보듯 사랑으로 보살피는 마음이 담겼다.

'어리석은 중생'을 깨달은 자도 비움과 겸손의 마음으로 수행심을 놓지 않는다는 의미로 본다지만 깨달은 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상(相)의 그림자가 드리운 비움이나 겸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리석다는 표현은 가치관의 정점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동물적 본능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고, 중생은 어원이 짐승인 것처럼 가치관에 의한 삶이 아닌 동물에게 주어진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사는 모든 것을 지칭한다. 어리석음과 중생은 같은 의미다. 어리석은 중생의 범주에 드는 것은 깨닫지 못한 사람과 그에 버금가는 영혼이다. 물론 동물도 중생이지만 생존에 따른 본능과 생각을 할 뿐이라 적극적인 제도에서는 한 발 비켜서 사랑과 기운으로 정화될 따름이다.

'이 법신불 일원상'에서의 법신불은 우주의 영혼이자 부처의 마음이다. 하지만 진리를 원만하게 인식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어 소태산께서는 일원상이라는 인식체계를 세웠다. 일원상은 법신불을 좀 더 사실적이고 세분해서 속성과 모습을 아울러 밝힌 진리다. 즉 법신불은 일원상의 형용이고 일원상은 법신불의 사실적 내용을 담은 진리 이름이다. 일원상은 우주의 근원이자 일반 사람들의 본래 마음일 뿐 아니라 그 속성은 비었으되 우주의 정보와 운행 그리고 창조적 역량이 담긴 지혜가 있고 우주가 우주로 될 수 있는 역동성과 끊임없는 균형과 창조를 이루며 한 우주로 존재한다.

이 일원상을 있는 그대로 본받는다면 진리의 마음이 되어 진리와 호흡을 하며 진리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이라 동물적 본능에 의한 자유의지가 본능에 따른 관념과 욕심이 생기고 또 습관의 흐름이 생겨 대부분 동물의 범주에 벗어날 수 없지만, 사유란 창조적 주관의 장점이 있어서 일원상의 속성을 마음 속에 담기만 한다면 우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신성한 존재뿐 아니라 우주의 주인이 된다.

법신불은 곧 우주의 영혼이자 부처의 마음
일원상 그대로 본받는다면 진리의 마음이 돼


<성주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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