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민영화,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환자생명과 의료정보로 이윤
의사의 진료 자율권도 사라져

▲ 의료민영화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의료민영화 100만인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의료민영화는 세계적으로 어떤 사회적 이슈보다 뜨겁다.

한국사회에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규제 완화의 물결과 함께 각종 정책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가 특히 눈여겨 보아야 할 것 중 하나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민영화 정책이다.

민영화라는 용어로만 보면 한국에서 언제 의료가 공공재였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겠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의료의 '영리화'와 '사유화'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적인 언어를 사용하자면 영리화에 편승하기 어려운 의원을 제외한 대형병원에게 모든 부대사업과 영리자회사를 허용하여 돈벌이를 위한 길을 대폭 열어준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원격진료의 광범위한 허용도 포함하고 있다.

정부는 2013년 12월 4차 투자활성화대책을 발표하면서 의료민영화에 대한 길을 열었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이 있고, 병원은 법으로 영리활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 연도별 요양기관 종별 건강보험 보장률 추이 (단위:%).

병원이 낸 수익은 다시 병원으로 환원하도록 해 의료의 상업화를 방지해 왔으며 지난 정권들도 영리병원에 대한 재벌의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정부는 투자활성화대책 발표 이후 의료민영화 반대여론이 너무 높아지자 국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시행규칙을 바꿔 영리병원을 시도하고 있다.

병원이 자회사를 만들어 수익사업을 하게 되면 그 동안 음식점, 급식업, 편의점, 안경, 산후조리업 등에 한정돼 있었던 부대 사업이 전면적으로 확대된다. 호텔, 종합체육시설, 목욕 등은 물론이거니와 건강보조식품, 의료기기, 의약품, 건강에 좋다는 어떤 것도 가능해진다. 물론 이러한 영리자회사를 차릴 수 있는 요건은 대형병원에 해당된다. 영리자회사가 확대되면, 의사는 치료와 관계없이 수익을 올리기 위해 환자에게 불필요한 물품을 사도록 할 수 밖에 없다. 의약품과 의료기기는 독점업체에 의해 제공되고, 건강 쇼핑몰도 가능할 것이며, 환자는 비싼 가격에 구입할 수 밖에 없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가중화되고 내 건강을 돌봐주는 의사가 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이를 거부할 수 있는 환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원격진료는 표면적으로 산간 지역 등 의료 이용에 지리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만성질환자에 한해서 실시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실제 원격진료가 실시되고 있는 나라는 캐나다처럼 땅이 넓은 국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리적 조건이 다르고, 현실에서는 재벌기업들이 병원과 함께 의료정보를 독점하고, 환자는 대면 진료를 받을 가능성이 현저하게 감소할 가능성이 더 많이 존재한다. 대형 통신업체와 병원의 연계, 원격의료기기와 의료의 연계로 혜택을 보는 사람은 환자가 아니라 대기업인 것이다. 삼성의 SAMI 프로젝트는 원격 U-health 시스템의 완성으로, 서울대병원과 SK가 공동으로 설립한 헬스커넥트는 대기업이 다양한 원력의료 사업을 펼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국립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을 끌어 들여 전자의무기록(EMR) 편집저작물 사용 권리까지 가지게 됐다. 의사들도 기업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국민들의 투약정보가 다국적기업에 팔려 나가 큰 문제가 됐던 것처럼 정신병, 에이즈, 임신출산 등의 개인 의료정보가 어떤 목적에 의해서도 활용 가능한 상황이 올 것이다.

한국은 공공병원의 비율이 10%로 OECD 국가들의 평균 공립병원 비중인 73%에 훨씬 못 미치며 민간보험이 주를 이루는 미국조차 공립병원의 비중인 27%에도 못 미치고 있다. 국가가 책임지고 접근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병원 비율이 매우 낮다. 더욱이 건강보험 보장률은 2012년 62.5%로 의료비의 약 40%는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며 보장율이 최근 하락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한국의 현실은 OECD 평균 전체의료비 중 본인부담금 비율 18% 정도에 비하면 매우 높다. 아직도 대다수의 국민에게 가족의 질병은 치료비 부족과 노동력 상실로 이어져 빈곤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되고 있다. 의료의 영리화가 대형병원 중심으로 확장되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의 서비스가 확대되면, 나머지 의료기관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즉, 국가의 건강보험 체계 자체가 흔들려 영화 '시코'에서 보듯이 수술하는 의사가 민간보험 회사의 허락을 받고 수술을 하거나, 맹장수술을 받는데만 수백만 원이 드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가까운 지인이 미국에 출장 갔다 교통사고를 당해 1주일 병원에 입원한 이후 한국에 날아든 영수증은 1억원이었다. 필자가 세금으로 무상의료를 실천하고 있는 캐나다에서 1990년 출산하고 이후 케어를 받기까지 따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지만, 미국에 유학 간 친구는 당시에 1600만원을 지불했다. 의료영리화의 확대는 이러한 이야기가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가 현실로 될 수 있음을 말한다.

현재 국민들은 의료민영화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의료민영화를 위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해 '의료민영화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100만인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7월31일 오후에 125만 명 이상이, 오프라인에서 60만명이 넘어서서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는 200만명을 돌파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다른 어떤 사회적 이슈보다 많은 국민들이 짧은 기간 내에 '의료 민영화 반대'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필자가 2013년 실시한 면접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의료인과 의료기관을 원하고 있었다. 첫째, '삶의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접근'해주고, '몸과 관련한 건강, 상담, 예방'등을 환자의 삶과 연계해 주는 의료인, 둘째, '생활에서 재도약할 수 있는 자부심 심어주기'와 같은 상담 및 정서적 지원, '환자의 내면을 읽어주고', '정신과 의사처럼', '만물박사가 되어', '정신적인 문제'를 지원하기, 셋째, 가족 전체의 병력, 체질, 습관, 유전병을 파악하여 진료를 해 주고, '가족처럼 편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곳', 넷째, 의료인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이러한 사항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이윤 중심의 의료체계와는 너무나 다른 이야기이다.

사람을 살리고 존중하는 의료는 민영화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의료체계를 갖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정치가 전제조건인데 정치는 정치인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의지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