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삼성에 다니는 교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삼성전자 내에 진공관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곳에 갈 때에는 특수 옷을 입고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다 흡입하고 들어가는데 그러다보니 진공관 안에서는 조그만 먼지하나도 크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본래 성품인 진공의 상태와 상통하는 점이 있어 웃은 적이 있다. 불가의 화두에 '문구멍으로 황소가 들어온다'는 것이 있는데 진공의 상태에서 한 생각이 황소처럼 크게 감지가 되므로 생긴 화두이며 이것은 마치 진공관에서 작은 먼지가 크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성품의 체가 언어도단하고 심행처가 멸하여, 없다는 말도 맞지 않는 자리이므로 불가에서는 대체로 말없는 것을 표준 하여 왔다.

대종사 당대 견성인가 문답공부를 할 때에도 여래선도리로 말없는 단계를 시험했다는 말씀을 향산 안이정 종사를 통해 받들었다. 그런데 대종사께서는 이러한 공도리에 그치지 않고 마음의 형상과 성품의 체가 눈앞에서 능히 보며 입만 열면 바로 말할 수 있어야 참견성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성리의 용(用)을 이야기한 것으로 성리의 체를 여의지 않으며 경계 속에 묘유를 드러내준 기준점과 같다.

서가모니부처님께서 열반 후 삼처전심을 하시며 곽시쌍부로 관밖으로 발을 내보여준 묘유는 누구나 신기해하며 묘유를 인증한다. 그러나 신통을 뺀 대종사의 묘유는 묘유인줄도 모르고 지나치기가 쉽다. 그만큼 평범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형상과 성품의 체가 눈앞에 있다는 것은 분별주착이 없는 마음(眞空)이 체가 되어 희로애락과 시비이해에 편착하지 않는다(妙有)는 말씀이요, 매매사사에 공정함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별주착이 없는 마음이 주심이 되도록 마음을 챙기는 수양공부를 해야한다. 또 희로애락과 시비에 편착하지 않도록 사리 연구와 유무념의 삼학병진을 하여야 한다. 밝게 불성을 본 사람은 희로애락과 시비이해에 능히 밝고 분명하며 능대능소하고 영령한 대중심이 독로하여 걸리고 막힘이 없으며 천진하여 가식이 없다.

7월30일 재보궐 선거도 끝나고, 우크라이나 영공에서는 이해관계로 3백여 명의 생명이 한순간에 살상당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연일 강자약자의 약육강식이 재현되고 있다. 대종사께서 살아 계셨던 일제치하와 2차 대전이 지나고 수 십 년이 지났지만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세상의 본질도 변함이 없지만 세상의 문제역시 끊임없이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외면하자니 마음이 아프고 관여하자니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런데 대종사께서 이러한 현실의 대안으로 마음혁명을 내놓았다. 그 마음혁명의 원리에는 성리라는 여의보주가 있고 그 보주는 오랜 훈련과 몸을 이기는 공부, 연마의 불식지공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이것이 세계평화의 지름길이라 하니까.

<기흥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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