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에서 만난 생명의 흔적, 숨결로 살아있어'

익산에서 철원은 참 멀다. 물리적 거리보다 마음으로 더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함부로 넘나들 수 없는 땅, 비무장지대(DMZ)가 존재하는 현실 때문이리라.

역사와 자연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땅을 7월26일 방문했다. 이번 여정은 코레일에서 경원선 개통을 기념해 DMZ-train 대국민 시승단을 공모, 12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인 가운데 선정돼 이뤄졌다.

64년 전 전쟁의 상처로 남겨진 땅이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으로 생태의 보고로 거듭난 그 곳. 평화와 사랑, 화합의 땅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DMZ.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희생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 전쟁의 아픈 상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노동당사.

시간이 멈춘 노동당사
경원선 평화열차 DMZ-train은 서울역에서 오전9시27분에 출발, 백마고지역에 11시 44분 도착했다. 백마고지역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에 위치해 있다. 백마고지역에서 내려 안보관광을 위해 연계버스로 갈아탔다. 두루미마을-철원노동당사-멸공OP-금강산철교체험-월정리역/두루미관-임시장터 및 백마고지역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점심식사 후 첫 방문지는 노동당사.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노동당사는 1945년 8월15일 해방 후 북한이 공산독재 정권 강화와 주민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하여 한국전쟁 전까지 사용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악명을 떨치던 곳이다.

건물 외벽에는 크고 작은 구멍과 부딪힌 흔적 등 전쟁의 아픈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당시의 긴박함을 대변하고 있다. 16개 계단에 탱크가 그대로 건물로 진입하려 한 넓은 바퀴 자국이 선명하다. 지금은 말없이 흔적 난 그대로 아물어 있지만 당시의 총성과 공포가 잠재되어 있다. 계단 앞에서 오랜 시간 멈춰섰다. 쉽사리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시멘트와 벽돌로 지은 3층 건물. 공산치하 5년 동안 북한은 이 건물에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수탈과 애국인사들을 체포하고 고문, 학살하는 등 소름 끼치는 만행을 수없이 자행했었다. 한번 이곳에 끌려 들어가면 반송장이 되거나 죽어야 나올 수 있는 무자비한 곳이기도 하다. 강원도문화관광 김명숙 해설사는 "이 건물 뒤 방공호에서 많은 인골과 함께 만행에 사용된 수많은 실탄과 철사줄 등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 새롭게 개통된 경원선 DMZ-train.

금강산 전철, 소태산대종사 탑승
DMZ 관광하는 동안 간간이 비가 내렸다. 금강산전기철도교량에 도착했을 때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했다. 금강산철교는 철원에서 출발해 동철원-양지-정연-김화-금성-창도-현리-화개-단발령-내금강까지 116.6㎞다.

아주 쉽게 남북을 왕래할 수 있고, 금강산도 언제든지 갈 수 있었는데…. 남북 분단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며 아쉬움을 가득 안은 채 한탄강 위에 우뚝 서 있다.

금강산전기철도교량은 1926년 세워졌다. 철원역에서 1일 8회 운행, 내금강까지는 4시간30분이 걸렸다. 요금은 당시 쌀 한가마니 값인 7원56전으로 1936년 당시 이용객은 연간 15만4천여 명이었다고 안내한다.

1930년 5월28일 소태산대종사도 경원선 기차로 철원에 도착, 금강산전철로 환승 이 교량을 이용해 금강산을 여행했다. 당시 동행했던 사람은 이동진화, 이공주 선진과 신원요 씨로 기록되고 있다.

대종사가 금강산을 여행하기 위해 왕복했을 교량에 서고 보니 교화의 의지와 인연 찾기 등 얼마나 열심히 일원교법의 씨뿌리기에 여념이 없었는지 헤아려진다. 또 '금강현세계 조선갱조선' 법문이 들리는듯 하다. 이 교량은 일제강점기에는 창도지역의 풍부한 지하자원인 유화철과 흥암을 경유하여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지하자원 수탈 및 금강산 관광용으로 운행하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에서 북한의 군수물자 수송에 사용됐다.

▲ 금강산으로 향한 철교.

피와 눈물로 얼룩진 현대사 현장
철마가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월정리역. 이 역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달리던 경원선 철마가 잠시 쉬어가던 곳이다. 현재 DMZ 남방한계선 철책에 근접한 최북단 종착지점에 위치해 있다. 역 바로 맞은편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간판 아래 한국전쟁 당시 이 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와 잔해,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 화물열차가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 채 누워있다.

분단의 한을 고스란히 안고 서서히 녹슬며 사그라져가고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달릴 수 없는 현실. 그렇게 제자리에서 정지한 지 64년. 세월이 기차를 좀 먹게 하고 그 위로 앉은 녹들도 슬픔이 더해진 만큼 농도가 짙어만 간다.

월정리역 광장에는 여러 개의 추모동상이 있다. 그 중 고(故) 김교수 대위 추모비를 찬찬히 들여다 봤다. 김 대위는 1953년 7월13~14일, 일명 7·13공세시 전사했다. 오전 6시부터 시작된 중공군 특유의 맹공격인 파상공격을 받아 사투를 거듭하다 진내사격을 요청하고 동굴로 대피했다. 김 대위는 "이대로 앉아 죽을 수는 없다. 나가 싸우자"며 선두에서 파괴된 동굴의 입구를 헤치고 달려 나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의 공적비 받침돌에 새겨진 박경석의 헌시 '초롱꽃 미소'가 영로를 위로한다.

피눈물로 쓴 오늘날의 역사, 우리는 평화의 희망을 염원하고 있다. 마음대로 발길을 옮길 수 없는 DMZ. 빨간 삼각형에 적힌 '지뢰' 안내판. 가끔 먹이를 찾아 헤매는 멧돼지가 지뢰를 파헤치기도 하고 덧에 걸려 다리 하나를 잃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겠지. 언제, 누군가에 의해서 저것은 꼭 터뜨려야만 할 것인가? 하루빨리 평화를 긴장하게 하는 모든 요소들을 거둬낼 길은 무엇인가? '어서 참답고 자유로운 생명이 이곳에 살도록 하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뿐이다.

안보관광의 마지막 방문지 '백마고지 위령비'를 참배했다. 이 고지에서 희생된 국군 844위의 영혼을 진혼키 위해 조성됐다.

모윤숙 시인이 쓴 '백마의 얼'이 새겨있다. '풀섶에 누워 그날을 본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갈라지듯 적들이 몰려오는 저 산과 강에서 우리는 끓는 피로 용솟음치며 넘어지려는 조국을 감쌌다. 이 한 몸 초개같이 바치려 숨찬 목소리로 다같이 강물을 헤치고 산을 부수며 달려오는 적들을 막았노라. 수많은 적을 따라 소탕하고 조국의 얼로 내 달려 떡갈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원수의 고함을 눌러 버렸나니 쓰러지며 죽으면서도 다시 일어나 숨결을 돌리고 숨지려는 조국을 살리었노라.'

녹색으로 끝없이 펼쳐진 평온만 존재하는 듯한 DMZ. 깊은 아픔을 간직한 저 건너편의 백마고지에 장맛비가 내린다. 오늘도 순직한 장병들의 아픈 상처를 씻어 주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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