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숨결〈정전〉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내용에 앞서서 구성을 살펴보면, 우선 진리를 내면화하여 살아가는 방법으로 진리의 속성을 인간의 관점에서 수행의 강령으로 잡았다. 진리의 속성인 공원정(空圓正)을 인격화한 모습으로 마음과 몸을 원만하게 수호하고 일과 이치를 원만하게 알며 마음과 몸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인 삼학공부를 하라는 부촉이다.

위 법문에서 반복되어지는 단어로 '심신' '원만' '또는'이 있다. 심신은 소태산 가르침의 특성이 돋보이는 단어다. 인간으로서 수행하고자 한다면 마음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몸도 아울러 돌봐야 함을 강조했다.

'원만'이란 두리뭉실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치우치거나 모자람없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라는 뜻


인간에게 있어 몸은 마음을 담는 기계와 같다. 마음이 전파라면 몸은 텔레비전이라 할 수 있다. 양질의 전파를 보내도 텔레비전의 모니터나 회로가 낡거나 고장나면 영상과 음향이 제대로 나올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마음이 그만큼 편안하지 못할 뿐 아니라 행동에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물론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수행해가는 것도 의미 있지만 건강은 지켜가는 것 자체가 수행이 되는 동시에 보편적 삶을 넘어 마음을 계발하는 데 그만큼 활발할 수 있다.

일과 이치를 알아가는 데에도 아우를 뿐 아니라 소태산께서는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온전하게 하라(靈肉雙全)며 진리와 삶을 아울러 닦아가라고 했다. 사람으로 태어나 수행을 삶에 담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환경을 제외하고는 병든 수행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두 원만하게 하라고 했다. 원만은 두리뭉실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원만이라고 하면 어디 한편에 치우치거나 모자람 없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은혜롭게 나타남이다. 마음과 몸 그리고 이치와 일에 대해도 서로 원만하기를 바랐다.

'또는'이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뜻으로 '수호' 아니면 '아는 것' 이것도 아니면 '사용하라'는 의미를 지닌다. 수학에서의 '또는'은 합집합으로 둘 중 하나만 맞아도 된다는 뜻으로 이 법문의 본의와는 다르다. 이 법문의 본의를 생각하면 '또는' 보다는 '그리고'라는 의미가 더 와닿는다. '그리고'는 국어에서 병렬접속 부사이고 수학에서 교집합으로 모두 다 아우르거나 맞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전〉 영어본에는 다행스럽게 or이 아닌 and로 표기되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소태산께서는 사람으로서 진리의 속성을 기반한 삼학수행으로 고루 원만하게 닦아가기 바라지만 꼭 심신을 아울러 닦아서 실생활에 유용할 뿐 아니라 원만한 진리의 인격을 얻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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