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광반조로 먼저 성찰합니다"

   

교도회장으로 교도와 교무 소통 중재
잠자고 있는 교도 깨우는 것이 시급한 과제

영광으로 가는 길은 배롱나무 꽃이 반겼다. 한 여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더운 날씨다. 어제 내린 비로 와탄천 물이 정관평으로 범람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영산성지로 향했다. 어느 새 물이 빠져 벼 이삭에는 그 치열했던 생존의 흔적이 남아있다. 다시 약속 장소인 영광교구청 사무실로 향했다. 걱정했던 마음은 다소 사그라지면서 소개받은 신앙인을 만나러 갔다. 영광교구 영광교당 달산 백달인(66·達山 白達仁) 교도.

첫 이야기는 불교와 인연으로 시작했다.

"사실 저희 집안은 불교와 인연이 깊습니다. 유명한 백학명 선사가 우리 증조할아버지 동생입니다. 아버지가 백수부면장을 하고 집안이 풍족해서 인근 죽사암이나 칠성당 건축 불사에 많은 도움을 줬지요. 특히 할머니의 불심이 어느 정도였느냐면 추운 겨울에는 스님과 보살님들을 집으로 모시고 와서 한철을 지내게 할 정도로 신심이 깊었지요."

그런 집안의 풍족함은 6.25 전쟁이 터지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아버지가 백수읍부면장을 하고 있을 때 6.25 전쟁이 터진 겁니다. 당시 면장은 피신을 간 상황이라 면사무소를 지킬 사람이 없었습니다. 인민군들이 쳐들어와서 결국 부모님을 비롯해 일가친척 23명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희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지요."

결국 의지할 데가 없었던 그는 할머니 품안에서 자랄 수 밖에 없었다. 후손이 없는 관계로 할머니의 당부 말씀을 새기면서 자랐다. '남에게 공손히 베풀어라. 악한 말을 하지 말라. 상대방을 응징하지 말라'하며 여리박빙(如履薄氷)하라했다는 것이다.

"할머니를 모셔야 했기 때문에 타지로 직장을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1970년에 검찰사무직과 세무서, 농협에 합격했지만 영광을 떠날 수 없어서 농협에 입사하게 됐지요. 영산성지 바로 옆에 살았지만 원불교를 잘 몰랐습니다. 42세 되던 해에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가정도 안정을 찾으면서 취미생활로 공기총 사냥을 했습니다. 영산성지 쪽으로 새를 잡으러갔는데 때마침 어떤 교무님이 내려와서 '여기는 성지다. 살생하지 말라'는 충고를 듣게 됐지요."

이를 계기로 마음의 각성이 일어났고, 살생하지 말라는 교무님의 충고를 마음에 새기게 됐다. 이후 취미활동을 해왔던 총기류는 파출소에 반납했고, 낚시물품은 폐기했다. 이런 차에 종교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도달하자 친척인 법성교당 교무를 스스로 찾아가 입교했다.

"교무님이 깜짝 놀라면서 당시 살고 있던 무등교당을 소개해 줬지요. 그 덕분에 무등교당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이 모두 입교해서 교당에 다녔지요. 교도부회장을 맡으면서 교당 신축봉불식까지 마치고, 직장 관계로 다시 영광으로 왔지요."

직장에서 명예퇴직한 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그는 현재 영광군노인복지관에서 경로당 업무를 살피며 영광교당 교도회장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최근 삼동원에서 진행된 정기훈련을 교도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마음에 와닿은 프로그램은 숲속에서의 명상이었습니다. 정해진 숲속을 찾아 걸어가면서 묵언하고, 정좌하고 선을 하는 데 오롯이 본래 나와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선정에 들었는데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그는 매년 진행되는 교도정기훈련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새로운 자신과 만나고 있다. 법회와 기도에도 특별한 정성을 드리고 있는 그는 모든 일에서 자신을 먼저 성찰하는 힘이 생겼다고 회고했다.

"김정심 교구장님이 부임한 뒤로 젊은 교도들의 법회 출석이 늘어서 고무적입니다. 교구장님께서 해룡고등학교 교사를 하셔서 그때 인연됐던 제자들이 교당에 나오면서 법회가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지역 교화에 대한 생각은 여느 교도회장과 마찬가지로 최우선 과제다.

"아직도 잠자는 교도들이 많습니다. 노인층도 있지만 젊은 층도 많아 특별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잠자는 교도들을 법회에 출석시키는 것이 우리 교당의 현실적인 교화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교립학교인 해룡중·고등학교 출신 교도들이 지역에서 기반을 잡고 활동하기 때문에 교화적인 마인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교도회장으로서 교도와 교무간의 소통을 중재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교당에서는 매달 교당교화협의회가 열리고, 회장단모임은 2달에 한 번씩 열어 교화 계획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교당의 4개 분과에서 훈련이나 교육, 행사, 사업 등을 책임지고 합니다."

영광교당은 토탈교화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이다. 옥빛소규모노인종합센터를 비롯해 지역의 명문인 영광원광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초록디딤돌 그리고 영광함평신협의 금융기관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역아동센터 초록디딤돌을 시작할 때 초대 센터장을 역임하며 교당 교화방향을 공유했다. "일을 하다보면 잘될 때도 있고 잘못될 때도 있지만 항상 집에 모셔진 법신불 사은님께 감사의 합장을 올립니다. 그리고 남을 탓하기 보다는 회광반조(回光返照)로 나를 먼저 살핍니다."

좁쌀만한 영단은 한 순간에 쌓이지 않는다. 그의 심법도 쉬지 않는 성실함 속에서 신앙심이 더욱 영글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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